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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자료사진)
서울대학교 정문(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에 발표된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요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서울대 입시안의 뼈대는 '논술강화'라고 할 수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중에서 2등급 1개 영역 이상과 탐구영역에서 1등급 2개 영역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1차로 수능시험 점수로 3배수를 뽑은 다음에, 2차로 '학생부 50% - 논술 30% - 면접 20%'로 평가한 후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것이 주요 요지다.

수능시험을 통해 3배수를 뽑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 중 상위 거의 1만명을 독점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1만명 중에서 2차로 내신과 논술, 면접으로 최종 선발하는 것이다.

지원자 한명 뿐이라도... 교육과정은 서울대가 기준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이 1만명의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양 온 매스컴이 야단 법석이다. 나머지 57만 명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선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육과정이나 입시지도가 서울대에 맞춰져 있다.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한자리 수에 불과한 고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입시지도는 교사의 입으로 부끄러워 말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의 빗나간 엘리트교육의 산물이다. 그리고 수월성 교육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엘리트체육이 강조되면서 체육관은 학교수업은 거의 받지 않는 운동선수들의 전용훈련장이 된지 오래되었다. 법과 따로 노는 학교교육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학교현장에 비일비재하지만 '관례'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다른 학교도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는 '핑계'로 묵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선이나 개혁의 의지가 거의 없다.

게다가 입시가 교육의 주된 목적이 된 이래로 나머지 학교행사는 통과의례적인 행사이고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한 커리큘럼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비교육적인 학사일정까지도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 것은 학교조직의 구성원들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논술 아닌 학생부가 더 반영되어야 한다

대학의 입시전형요강은 이와 같은 일선학교의 실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대학대로 '손대지 않고 코푸는 격'으로 너무 안이한 입시요강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서울대의 입시요강을 보면 앞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더욱 파행으로 치닫도록 만들 것이 명약관화하다.

다행히 어학시험(토플·토익·텝스)은 반영하지 않는다는 서울대의 발표가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문제는 바로 논술이다. 학생부 성적을 50%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실질반영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올해 40%를 반영하는 학생부 성적의 실질반영률은 2.3%에 불과하다. 기본점수를 높게 잡기 때문에 전 과목의 성적을 반영한다고 해도 서울대 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학생부의 실질반영률을 높여야 한다. 학생부에 의해 실제 서울대의 입학과 불합격이 결정될 정도의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물론 고등학교에서 입시부정이나 성적조작의 비교육적인 사건이 발생한 경우도 있지만, 엄격한 시험관리와 비리교사의 중징계가 병행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단 한번의 시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수능시험보다는 3년 동안의 지속적인 관리와 시험에 의해 평가되는 학생부가 학생의 대학수학능력을 재는 수단으로 더 타당하고 생각한다.

'통합형 교사' 만들지 못한 사범대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2004년 자료사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2004년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요강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논술이다. 논술은 여러 평가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중요한 평가도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논술은 당락의 중요한 측정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현재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심층논술이나 통합형 논술은 고등학교에서 이루지는 교육이 아니라 대학에서 행해져야 하는 교육이다. 고등학교의 교육은 국민공통교육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등학교에서 심층교육이나 통합교육이 실시되기 어렵다. 우선 교사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범대에서 실제로 통합형 교육이나 심층교육이 이루어졌는지 묻고 싶다. 일선 학교에서 심층교육이나 통합형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사범대에서 먼저 교사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이 그렇게 시행되어야 한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교사들에게 이런 교육과정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도 소화하기가 어려운 학생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심층교육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요즈음 학생들의 터무니없이 부족한 지적 욕구나 독서량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읽는 책의 전부가 판타지 소설에 불과하다. 물론 판타지 소설이라도 읽는 학생은 다행이다. 거의 대부분이 인터넷과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엄지족들이다. 틈만 나면 휴대폰과 인터넷을 가지고 논다.

논술인가, 글짓기인가

우리나라에서 논술이 지나치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논술이 종합평가 도구라는 주장을 하지만 논술은 한계를 갖고 있다.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쓸 것인가(how to write)'가 아니라 '무엇을 쓸 것인가(what to write)'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술교육은 쓰는 방법(글짓기)에 그치고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철학과 사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도덕과 사회시간에 맛보기에 불과하다. 전공 교사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비전공교사가 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교육의 현실을 감안할 때 논술교육은 글짓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중요한 것은 독서와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를 통해서 배우거나 익힌 것을 체험이라는 현장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논술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올바른 논술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단지 머리로만 배운 지식은 절대로 체화(体化)되지 못한다. 가벼운 기억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는 말이다. 실제생활에서 체득된 지식이 글로써 표현되었을 때 논술이라는 잣대로 평가될 수 있다.

학생들의 사고, 점수 매기기 어렵다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포하고 있다(2004년 자료사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1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포하고 있다(2004년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또한, 논리적 비판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평가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평가도구를 과연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간다. 글짓기 능력이 아닌 통합적 비판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는 측정도구나 수단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일 가능성이 크다. 사상과 사고방식이 채점자의 주관성에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관성을 상대적인 수치로 객관화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고 학생들의 상대적 가치를 어떻게 객관적인 평가를 할 것이냐는 것이다. 글짓기 능력이야 객관적인 맞춤법이 존재하지만,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학생들의 사고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기껏해야 '상·중·하'나 '수·우·미·양·가' 정도의 평가 가능하지 않을까?

어차피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궁여지책으로 선택된 측정수단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런 논술이 합격과 불합격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주면 평가의 객관성과 타당성에 대한 신뢰도가 약해질 수도 있다.

어려운 서민경제의 주범으로 교육의 가장 큰 폐해로 간주되고 있는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입시제도나 평가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교육을 가장 황폐화시키고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사교육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을 대학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중등학교의 교육의 정상화가 더 시급하다. 직업훈련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육의 내실화를 위해서도 위기에 빠진 초·중등학교의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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