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석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3시도 못 됐을 것이다.
경북 청도, 운문사의 밤은 짧았다. 꿈결인 듯 들려오는 목탁 소리. 사람도, 나무도, 풀도, 길짐승도, 날짐승도, 풀벌레도 일어나라,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 부처님께 새벽 예불 드리러 가자. 놀라지 말고 서서히 잠깨어라. 목탁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커졌다 작아지고, 다시 서서히 커지는 목탁소리. 깨어나라, 깨어나라, 미혹에서 깨어나라.
나는 눈도 못 뜨고 귀만 깨어 목탁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점점 아득해져 간다. 끝끝내 미혹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생은 도량석 소리를 자장가삼아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호거산 계곡 바로 옆 요사채, 계향실에서 자는 잠은 달다.
창이 밝아 눈을 뜬다. 나를 깨우는 것은 늘 소리가 아니라 빛이다. 시간을 알 수 없다. 주머니를 뒤져도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잃어버린 것일까. 실상사 연관 스님에게 얻어 찬 손목시계를 한동안 잘 지니고 다녔었다.
오전 6시의 아침 공양은 끝났을 것이다. 운문사의 식단은 정갈하다. 운문승가대학 사집반(2학년) 학인 스님들이 직접 농사지은 국거리로 국을 끓이고, 배추와 무로 김치 담고, 온갖 채소로 반찬을 만든다. 학인 스님들이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여느 절집처럼 마늘과 파·부추·달래·흥거 등의 오신채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운문사의 음식은 언제 먹어도 정갈하고 속이 편안하다.
하지만 내가 운문사에서 아침 공양 시간을 맞췄던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운문사의 밥이 절밥 중에서도 상등으로 달고 맛있으나 오전 불식의 게으른 부랑자는 밥시간 놓친 것이 아쉽지 않다.
비구니 사찰, 운문사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260여 명의 학인 스님들이 공부한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 한 신승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진평왕 30년(608년) 원광국사에 의해 1차 중창되었다. 원광국사는 좌우명을 묻는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 5계를 준 것으로 잘 알려졌다. 운문사는 또 고려 시대에는 일연선사가 주지로 추대된 뒤 머무르며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1105년(고려 숙종 10년), 원응국사에 의해 건립된 뒤 수차례에 걸쳐 중창된 보물 835호, 운문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지금 한창 보수 공사 중이다. 대웅보전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이 자비스런 배가 고해의 바다를 건너는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다 준다.
운문사 대웅보전 천장에는 떠나려는 배에 악착같이 매달려있는 '악착보살'이 있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문이 잠겨 볼 수 없다. 기필코 깨닫고야 말겠다는 악착같은 보살의 마음이 남의 마음 같지 않다.
그런데 운문사에는 이 대웅보전 말고도 대웅보전이 하나 더 있다. 만세루 앞의 대웅보전이 그것이다. 절집에서는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면 대웅보전이라 하고,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면 대적광전, 혹은 비로전이라 한다. 아미타불을 모시면 무량수전, 미륵 부처님을 모시면 미륵전이다. 어느 부처님이 주불이냐에 따라 법당의 이름이 다른 것이다.
공사 중인 대웅보전은 조선 숙종 연간에 중창된 건물이고, 1994년에 새로 신축한 건물이 만세루 앞의 대웅보전이다. 운문사에서는 대웅보전을 신축하면서 옛 대웅보전의 현판을 비로전으로 바꿔 달았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마침내 비로전으로 바로 잡은 것이다. 현판을 바꾼 것은 또한 한 절에 본전이 두 개 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옛 대웅보전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이 문제였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지만 비로자나불의 제작 연대가 대웅보전보다 앞선다는 증거가 없으니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로전 현판이 떼어지고, 다시 대웅보전 현판이 걸렸다. 한 절에 대웅보전이 두 개가 돼버린 연유가 이러하다.
나는 문화재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주인이라도 문화재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운문사에서 옛 대웅보전 건물을 훼손한 것도 아니고, 현판이 보물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법당건물은 박제화된 국가 문화재이기 이전에 현실에서 참배하고 있는 성전이다.
건물의 연대가 앞이고 불상이 뒤라 한들, 그 순서가 무어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비로전이고, 미륵불을 모시면 미륵전이다. 게다가 대웅보전 현판 대신 비로전 현판을 단다 해서 건물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불교 성전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불교 교단이지 국가 기관일 수는 없다.
문화재청의 고루함
현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그의 저서에서 대웅보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샌님여, 운문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불상은 비로자나불 맞지예?"
"그렇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불이지."
"그란데 와 대웅보전이라 캅니까? 대웅보전은 석가모니가 모셔진다고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습지. 조선후기 들어서면 중들이 계율보다 참선을 중시한다고 불가의 율법을 등한시 했어요. 그 바람에 저렇게 잘못된 것이 많아요. 굳이 해석하자면 본래는 석가모니 집인데 비로자나불이 전세 살고 있는 것이라고나 해야 될까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306쪽)
유 청장이 지적했던 과거 스님들의 잘못을 오늘의 스님들이 바로잡겠다는데, 문화재청이 막고 있다. 이제 와서 유홍준 청장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
사적 258호인 명동성당은 원래 종현 성당이었다. 나는 문화재청이 명동성당 건물을 사적으로 지정하며, 명동 성당의 현판을 원래 이름인 종현 성당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천주교회에서 라파엘이라는 영세명을 받은 사람이다. 교회에서는 교회의 법도를 따라주고 절에서는 절의 법도를 따라주는 것이 옳다. 안내판에 이름이 바뀌게 된 유래만 써주면 될 것이 아닌가. 문화재청의 고루함이 가히 문화재감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도 있다. 네가 있음으로 인하여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너도 있다. 삶과 죽음 또한 연기의 관계에 있다. 삶이 있음으로 죽음이 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 또한 내일의 나는 아니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머물러 있는 실체가 없으니 삶 또한 실체가 없다. 삶이 없으니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죽음에 대한 고민은 허구의 고민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절에 와서도 존재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죽음이 없다는 뜻을 알겠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허구적이라는 뜻 또한 잘 알겠다. 우리는 결코 죽음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실체가 없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일 터.
설령 죽음이 있다 한들 죽음이야 죽은 자의 것이지 산자의 몫은 아닌 법!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 대체 삶은 어쩔 셈인가? 죽음이 있든 없든 소멸 되지 않는 이 삶의 고통은 어쩔 것인가? 늘 그렇듯이 존재에게는 죽음이 아니라 삶만이 유일한 문제인가!
기도객들의 흔들림 없는 '믿음'
공양간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사리암에 오른다. 사리굴 입구와 관음전까지 기도객들로 꽉 들어차 있다. 다들 나반존자를 주문하며 절을 한다. 도량은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사리암의 주된 신앙 대상은 특이하게도 불보살들이 아니고 나한이다. 나반존자. 관음전 안의 사람들마저도 관음보살이 아니라 관음전 밖의 나반존자를 향해 절한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으로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 산상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고 한다. 사리굴 천태전에 나반존자 상이 모셔져 있다.
나도 기도객들 틈에 끼어 108배를 올린다. 참배객들은 기도의 반응에 대해 추호도 의심이 없어 보인다. 대체로 기도객들이란 질병의 치유가 아니면 자신이나 가족의 이기적 욕망을 들어 달라고 기원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저 기도객들의 흔들림없는 믿음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믿음, 깊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이미 큰 복을 얻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도 가만히 주문을 외워 본다. 내 본래 성품이 부처라면 나반존자는 나의 법신 비로자나불인가. 그렇다면 나반존자에게 기도한 것은 곧 나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다. 오를 때 가늘던 빗방울이 굵어진다. 이제 내려갈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