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그 연상들은 대부분 추억, 회상 등이 될 것이며, 그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이끄는 종착점에는 아마도 각자의 고향풍경이 있을 듯하다.
설혹 도시출신이라 하더라도 회상 속 어린 시절의 동네는 시골과 닮아 있게 마련이다. 연상이 주는 일종의 착각과 과장이긴 하지만 해될 것 전혀 없는 아름다운 왜곡이다.
온 누리 사람들이 태어난 곳을 향해 끝없는 귀성행렬을 해마다 거듭하는 한가위가 가까워오면서 가을은 마치 저녁밥상에 자연스레 모이는 가족처럼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 가을의 정감을 물씬 풍기는 전시회가 있다.
20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내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화랑협회 주최 '2006 아트 페어'(24일까지, 아래 아트 페어)에서 가을의 완상을 적극적으로 돕는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다.
타계한 김환기, 이응로 화백의 작품을 내놓은 '인사갤러리'를 비롯해 73개의 화랑이 참가하고 있다. 아트 페어는 화랑이 선정한 최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대 예술 조류가 대체로 그렇듯이 이번 아트 페어에서도 비구상 작품들이 대세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한 대세를 따르지 않아서인지, 아트 페어에서 발견한 구상회화는 더 눈길을 끌었다. 사실적 풍경화는 그림에서 그다지 특별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특별한 그림들보다 돋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세종화랑 부스에 전시된 박영길 화백의 그림들이다. 박 화백은 인물화 부분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인 화가다. 특히 2000년 정부에서 장영실 표준영정작가로 선정된 박 화백이 20 여 가지로 난립하던 장영실 영정의 기준을 정한 것은 박 화백 본인에게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재 숙명여대에만 개설된 연필인물화 강의를 맡고 있는 박 화백의 화풍의 중심은 사실성이다. 박 화백은 "나 자신이 아직은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사물과 대상에 지치지 않고 파고들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는 끝까지 리얼리즘 작품을 그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박 화백은 인물화를 그리듯이 풍경화에 표정을 넣는다고 한다. 박 화백이 그리는 풍경들이 대부분 오래 전 고향동네, 고향집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톡하고 건들면 금세 옥수수 알갱이들이 툭툭 떨어질 것 같은 시골집 흙벽은, 보는 순간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 닭 몇 마리가 닭장도 없는 집 마당에서 한가로이 모이를 쪼는 모습이나 이제는 거의 사라진, 소를 부려 쟁기질하는 풍경은 사진과 다른 그림만의 아우라가 담긴 향수를 제공한다.
예술은 끝을 모르게 분화하며 발전하고 있고, 고전적인 미학은 때로 반미학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가끔씩 사소하게 겪는 추억의 책장에는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풍경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세월이 거침없이 지나고 도시의 식욕이 아무리 왕성해져도 변치 않는 흙냄새, 풀냄새 풍성한 그 가을의 풍경은 그림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멈춰 서게 할 것이다.
박 화백의 전시를 축하하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온 김경택 전 제주부지사는 "현대그림이 지나치게 난해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박 화백 그림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며, 서울이 아니라 어디라도 박 화백의 그림을 보기 위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표준영정67호 지정자면서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위원인 박영길 화백은 작년 뉴욕24갤러리에서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초대전과 순회전시를 여러 차례 열었다. 올 11월 16일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세계아트페어에 한국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