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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센터의 동북공정 홈페이지.
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센터의 동북공정 홈페이지.
먼저 적을 알기 전에 우리를 한번 살펴보자. 얼마 전 발해사 문제가 터지자 갑자기 몇 명의 연구자들이 급히 베이징으로 들어왔다. 목적은 웨이칭궈(魏忠國)의 '발해국사'나 올해 나온 중국교과서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이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책이 아니고, 주문을 통해서 구입할 수 있는 드문 책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최근 품절까지 되면서 책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들이 들어오기 며칠 전부터 급히 여러 곳에 전화를 해서 시간을 맞추어 전달해줬다. 하지만 교과서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었는데, 이들도 구해서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일이 이렇다. 언론에서 득달같이 문제를 불거지면 연구자들이나 기관에서는 다시 호들갑을 떨면서 뒷수습을 한다.

한 중국 현대사 전공자는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접근방식에 통탄을 금하지 못한다.

"후진타오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나한테 우리나라 기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후진타오 성향이 어떻고, 같이 갈 사람들이 누군가 하구요. 어떻든 만났죠. 그래서 물었어요. 아니 그간에 당신들은 뭐했길래 그런 정보 하나 파악하고 있지 못하냐고. 솔직히 말하더라구요. 자신들은 한국서 국회의원이나 뭐다 오면 골프치고 접대할 시간도 부족해서 사실 그런 일 할 시간도 없답디다."

반면에 한 일본 기관에서 쓴 중간 수준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전한다. 한 지역에서만 10년 이상 머물러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을 관리한 그들의 정보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우리 기관원들은 몇 년에 한번씩 바뀌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런 정보력을 가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갑자기 달아올랐다 식어버리는 '고구려 열기'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 최근에 앞쪽에 잔디밭이 새로 정비됐다.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 최근에 앞쪽에 잔디밭이 새로 정비됐다. ⓒ 조창완
고구려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길게 봤을 때는 25년 이상 동북지역 관련 연구를 통해 동북공정의 기틀을 다지고, 2002년부터 동북공정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어떤가. 동북아재단의 한 연구자는 필자에게 신음하듯 말했다. "우리나라에 고구려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8명 정도인데, 그 가운데 계속 연구를 하는 인물은 3~4명도 안 될 것"이라고. 발해 연구자는 거의 전무에 가깝다.

이미 고구려와 발해 땅의 대부분이 중국 영토이고, 발굴 등 연구 기초작업이 중국에 의해 독점적으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에는 연구자 조차 몇 명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일이 터지면 갑자기 달아오르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냄비처럼 식어버리는 게 우리나라의 고구려 접근 방식이었다.

각 나라의 영토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제적인 논문발표 등 학술적인 작업이다. 국내에 있는 연구자의 부족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북한과 중국 조선족 학자들의 연구 자료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게 우리 학계의 실정이다. 연변대 박진석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과 유연산 같은 재야사학자등 많은 연구자들이 있지만 우리 학계는 다양한 이유로 이들과 제대로 연대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의탁할 수 있는 고구려 연구나 발해 연구는 우리나라에 있는 문헌 사료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은 현재 조선족 동포조차 철저히 배제한 채 진행하는 다양한 발굴작업과 풍부한 자국의 사료를 통해서 논문 등 학술작업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야 주목을 받지만 중국의 많은 사학자들은 고구려사를 자국역사로 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중국내 자료들에서 고구려를 보는 시각을 정확히 정돈하고 자료로 보관하는 것인데, 이런 기초작업 조차 제대로 진행되는 지 의문이다.

동북공정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중국군 고위 관계자들이 고구려의 왕성 환도산성 터를 돌아보고 있다.
중국군 고위 관계자들이 고구려의 왕성 환도산성 터를 돌아보고 있다. ⓒ 조창완
가장 큰 문제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도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대척점에서 티베트 등을 중국 역사에 넣으려는 '서남공정'을 예로 들어보자.

티베트는 청나라때 까지만 해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정권이다. 멀리 봤을 때 당나라때 화번공주(화친을 위해 상대국으로 공주를 시집보내는 정책)로 송찬캄포에 시집간 문성공주로 인해 두 나라의 인연이 시작됐고, 만주족이 지배하던 청나라 때 정치적 관계가 밀접해졌다.

이후 티벳은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었고, 미처 자체적인 힘을 얻기도 전에 중국이 점령하면서 중국 땅이 된 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한족의 티베트 인구 편입과 칭짱철로 등으로 인해 티벳의 자력으로 인한 독립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후 티벳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묶으려는 노력을 계속했고, 결국 지금에 이른 상황이다.

한국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베이징 동북쪽 왕징(望京) 인근 화지아디(花家地)에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이 있다. 대학원 건물 등 몇 개로 나누어진 크지 않은 건물 군이지만 이곳에서 막시즘을 비롯해 중국 사회과학 이론의 전반이 완성된다. 최근에는 공산당(共産黨)의 당명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으로 바꾸는 작업도 암암리에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사회과학원 대학원의 전경.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사회과학원 대학원의 전경. ⓒ 조창완
고구려나 발해 등 연구나 정책을 총괄하는 곳도 이곳 변강사지(邊疆史地 http://chinaborderland.cass.cn)연구센터다. 문제는 동북공정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중국내 사학자들은 동북공정의 목표가 2005년에 끝난 간도 협약으로 인해 간도에 대한 우리나라와 벌어질 영토 분쟁을 대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대로 북한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북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향후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지 알 수 없다. 연구가 있다면 분명히 목표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할 텐데, 자체적으로 그 궁극적 방향을 모른다는 게 우리나라의 문제다.

1500년 걸려 티벳을 삼켜버린 중국

한국에서는 동북공정에 반대하는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중국에 보도되는 일도 극히 일부다. 관련보도가 그나마 나오는 곳은 베이징에 사무실이 있지만 콘텐츠를 홍콩에서 관장하는 펑황왕(www.phoenixtv.com) 정도다. 따라서 이런 활동은 국내에 이 문제를 고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내에 한국민의 입장을 전달하는데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셈이다.

현재 중국언론에서 동북공정에 관한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나오는 보도는 서울 등지에 특파원으로 나간 기자들이 한국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정도다. 분위기도 동북공정이 한중 우호를 그르치면 안된다는 정도의 수준이다. 실제로 검색사이트인 바이두(www.baidu.com)에서 '동북공정'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나오는 숫자는 올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12개 정도고, 내용도 최근에 한국에서 동북공정에 대한 분노를 전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 동북공정에 관해 발표한 내용은 거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 등을 위해 논리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다. 중국과의 고구려 논쟁은 한 순간의 싸움이 아니다. 수백년 후를 보면서 정리해야 한다. 당나라 때 티베트에 문성공주가 들어갔고, 이후 1500년 만에 티베트를 지배하는 게 중국이다.

변방을 흡수하는 중국의 블랙홀에 빨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논리와 증거를 세워야 한다. 최근에 나온 관련 보도는 결국 나중에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특히 백두산 문제나 이어도 문제가 고구려 문제와 섞일 경우 오히려 더 문제를 복잡하게 될 수 있다. 백두산의 경우 현재 북한과 중국이 공유하는 만큼 객관적으로 보면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게 맞는 순서다. 그런데 사안사안을 동북공정으로 묶어내면서 우리 스스로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형국이다.

정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부지. 중국 정부는 동포 학자도 배제한 채 발해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부지. 중국 정부는 동포 학자도 배제한 채 발해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 조창완
한중 역사 접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선을 긋는 일이다. 한중간 역사적 경계를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연구실적을 보고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일어나는 만주나 거란 역사를 우리 역사에 넣으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상대방의 논리에 빠져드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과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현숙씨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발해나 만주 역사를 접근하면 결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또 지금 우리나라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결론도 나올 수 없고, 두 나라간 감정만 나빠진다. 중요한 것은 중국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80년 이후 중국 사학계에 중화사관을 가진 좌파가 주도권을 잡았고 한반도를 접근하는 사관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말을 못하고 있는 일반사학자들의 관점을 재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 학문과 문화를 일으켜 세운 주덕해의 기념비. 문화대혁명 때 탄압받다가 작고했다.
중국 조선족 학문과 문화를 일으켜 세운 주덕해의 기념비. 문화대혁명 때 탄압받다가 작고했다. ⓒ 조창완
문제는 우리 사학계가 중국에 맞설 학문적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온 한 동포 사학자는 "고구려에 관한 한국 학자들의 논문은 수 십년 전의 것 그대로다. 이대로 중국을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나오는 만주나 발해에 대한 접근도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논리적 자료나 근거를 세우기 힘들기 때문에 동포 사학자들도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섯부른 접근은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료적 근거를 찾아서 학문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포학자 가운데는 이 문제에 관해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학자들이 많다. 자치주를 만든 주덕해 주장(州長)의 주도하에 교육이나 문화가 발전하면서 고구려 연구도 많은 자료를 축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학자들은 제대로 낸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노년층인데도 그들의 연구 실적을 계승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이 학자는 통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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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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