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추리(일반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서 전개하는 형태로, 범인이 범죄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먼저 나온 뒤 형사와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이 기술된다)와 마찬가지로, 고전추리 소설의 한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이 밀실트릭이다.
'밀실'이라는 단어 그대로 (거의) 완벽하게 폐쇄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다룬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언뜻 보면 난해해 보이면서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본다면 이런 밀실 트릭을 만들거나 간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밀실 트릭'이라는 용어에서 '트릭'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밀실 트릭을 사용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바로 이 트릭을 강조한 작품들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겉으로는 밀실범죄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밀실범죄가 아니었다'는 형식이다.
이런 밀실 트릭을 만들어낸 작가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존 딕슨 카아'를 들 수 있다. 밀실과 괴기의 대가이자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였던 딕슨 카아는 수많은 밀실 트릭을 만들어냈다. 카아는 자신의 작품 <세 개의 관>에서 기드온 펠 박사의 입을 빌어 밀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딕슨 카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국내 작가 노원도 자신의 작품 <위험한 외출>에서 작중 인물을 통해 밀실에 대해 설명한다. 노원에 따르면 밀실 트릭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살인처럼 보이는 우연한 죽음. 처음부터 밀실에서는 범죄가 없었다.
2. 살인이긴 하지만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죽음에 몰리는 경우. 이 경우 자살처럼 보일 수 있다.
3. 밀실에 숨겨진 장치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 수화기를 드니 총탄이 발사되는 경우.
4. 살인처럼 보이는 계획적인 자살.
5. 밀실 밖 인물에 의한 살인.
6. 밀실 안 인물은 살아있는데, 뛰어 들어가 죽이고서 애초에 죽어있었다고 떠드는 경우.
7. 피해자가 다른 곳에서 치명상을 입고 밀실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죽는 경우.
2의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이 존 딕슨 카아의 <연속자살사건>이다. 3의 트릭을 사용한 작품은 부지기수지만 대표적으로 반 다인의 <그린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5의 경우는 역시 딕슨 카아의 <흑사장 살인사건>이고 7의 경우는 반 다인의 <케닐 살인사건>에 해당한다.
밀실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밀실 트릭은 위의 분류보다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코난 도일과 앨러리 퀸, 가스통 르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밀실 트릭을 만들어 냈다.
밀실에 도전하지 않은 추리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밀실은 추리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다루고 싶어 하는 소재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밀실트릭으로 일본 작가 '아카가와 지로'가 <삼색털 고양이>에서 사용한 방법이 있다. 피해자가 밀실에 들어간 후 외부에서 밀실자체를 조작해 살인하는 경우다.
이런 밀실 트릭은 꽤나 매력적이고 호기심이 생긴다는 점에서 작가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한번쯤은 접하게 만드는 영역이다. 하지만 고전추리소설의 대가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밀실 트릭은 이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밀실 트릭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일 수밖에 없다. <오락으로서의 살인>의 저자인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새롭게 추리소설을 쓰려는 작가에게 '천재가 아니라면 밀실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도 기시 유스케는 2005년에 발표한 6번째 작품 <유리 망치>에서 밀실에 도전한다. 기시 유스케는 초기 작품인 <검은 집>과 <천사의 속삭임>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기시 유스케는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자료를 철저히 조사하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시 유스케는 초기에 호러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5번째 작품인 <푸른 불꽃>부터 추리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는지, 연달아서 정통 추리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리 망치>는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탐정과 변호인이 밀실에서 일어난 범죄를 추적한다. 2부에서는 도서추리의 한 장면처럼 범인이 범죄를 계획하고 구상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마지막에 두 부분이 합쳐지면서 밀실 트릭의 전모가 드러난다. 왜 제목을 <유리 망치>라고 했을까, 내내 궁금했던 이 질문도 마지막에 가야 풀린다.
기시 유스케가 <유리 망치>에서 사용한 밀실 트릭은 위에서 나열한 7가지 방법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5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유리 망치>는 수많은 첨단 기술과 장비가 탄생하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사용한 범죄 수단과 범죄를 추적하는 방법도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어찌 보면 독자들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이런 밀실을 구현하는 게 가능할까? 밀실은 불가능 범죄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표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무대를 만들어내고 그런 무대를 간파하는 데는 천재적인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에서 여전히 밀실은 매력적인 소재다. 밀실 트릭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 자체가 고전추리소설의 정수를 집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드온 펠 박사의 말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풍기는 매력이 있다. 완벽한 밀실을 무대로 한 불가능 범죄의 구현. 이것은 추리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탐정에게도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다.
현대에 새롭고 신선한 밀실 트릭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란 테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덧붙이는 글 |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도서출판 영림카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