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이다."(정동영 측)
"배려다."(김근태 측)
"코미디다."(김한길 측)
오는 1일 독일에서 귀국하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김근태 현 의장이 공항으로 직접 마중 나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같이 반응들이 나왔다.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지만 물밑에선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대통령 영접 문화도 사라진 마당에 현직 의장이 전직 의장을 마중나가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의장쪽의 정청래 의원은 일단 "파격"이라고 평했다. 정 의원은 "인간적으로 독일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의 성격이 있고, 앞으로 함께 당을 잘 이끌어 가자는 취지 아니겠나"라며 "마중 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정'을 강조했다.
김근태 의장 측에선 '배려'의 의미를 최대한 강조했다. 한 참모는 "전직 의장에 대해 예우이고 이후 (정동영 전 의장의) 활동공간을 확보하는 데 있어 (김 의장이) 최대한 배려한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참모는 "당의 단결을 위해 그 쪽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의 귀환] '영접'은 단결과 배려? 그러나...
하지만 이같은 논리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주변 반응은 "꼴이 우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당직자은 "당의장은 의전이라는 게 있는데 나중에 따로 조용히 만나면 되지 직접 인천공항까지 나가는 건 오버"라며 "역대 그런 사례가 없다, 한 1년 나갔다가 오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다른 당직자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꼬마들의 합종연횡이냐"는 냉소도 들린다.
김 의장측 내부에서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한 측근은 "과잉 액션"이라는 표현도 썼다. 주요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과거 DJ(김대중)와 YS(김영삼) 관계가 경쟁·협력 관계이지 않았나, 그런 모양새가 연상되긴 하는데…"라면서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고 말했다.
자신도 공항에 마중을 나갈 계획이라는 정동영계의 한 초선 의원 역시 "좀 어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참모들 사이에서도 "조용히 들어오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김근태·정동영 두 열린우리당 최대 주주의 공항 해후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김 의장 측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선지 "일정을 고려해 참석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10월 1일은 국군의 날. 대통령도 참석하는 행사가 대전 계룡대에서 열린다. 오전 10시 30분께 본행사가 시작되는데 1시간 뒤에 출발한다 해도 정 전 의장이 도착하는 오후 1시 인천까지 도착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다.
대신 "가급적 애를 써보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비서실장을 보내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오버'하는 모양새는 피하겠다는 눈치다. 정 의장 측에선 "우리가 요구한 게 아니다, 그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공을 넘겼다.
'영접' 의지는 먼저 김 의장 측에서 보였다고 한다. 최근 정 전 의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김 의장이 "시간이 되면 마중을 나가겠다"고 말했고, 참모들에게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것.
[김근태의 파격] 마음의 빚 졌지만, 속내는
김근태 의장은 정 전 의장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정 전 의장이 지방선거의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퇴했고, 김근태 당시 최고위원에게 '의장직 승계'를 제시했다.
측근들 사이에선 반대도 많았지만 김 의장은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비대위를 넘겨받았고 이후 당의 일인자로서, 차기 대선주자로서 행보를 펼쳤다. 공생·공멸이 이 둘을 묶어준 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속까지 한 마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근태 의장 측근의 입에선 "솔직히 내부 단결이 외부상황보다 어렵다"며 "당이 그만큼 떠 있다"고 하소연했다. 모양새 구겨지는 부담을 감수해서라도 '공항 영접'을 결정한 것은 이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사무처 직원 채용조차 의장 의지대로 안된다는 것. 열린우리당은 최근 창당 이후 처음으로 신입당직자 공채 공고를 냈다. 김근태 의장의 청년실업 해결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당초 10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당 재정상황도 좋지 않고, 당이 비상 상황인데 무슨 직원 공채냐"는 태클이 걸렸다. 여기엔 "결국 사무처에 자기 사람 심겠다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깔려 있다.
'뉴딜' 사업도 마찬가지다. 원내대표 측의 비협조는 김 의장측의 오랜 불만이다. "법안에 '뉴딜'자 들어가면 정기국회 처리가 어렵다"는 인식이다.
정청래 의원은 사견을 전제로 "뉴딜은 하면 안 되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서민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재벌경제 살리기"라며 김 의장이 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제시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정동영 의장 시절에도 출총제 폐지 논의가 일었지만 정 의장이 보류시켰다"라고 덧붙였다.
[김한길의 도발] 심상치 않은 움직임.. 킹 메이커 되려나
김한길 원내대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를 접촉한 사실을 공개했다. 범여권 통합에 외부인사로 거론되는 주요인사들이다.
이를 두고 김 원내대표가 '킹 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김한길의 도발"이라고 평했다. 사전에 김근태 의장의 '재가'가 이뤄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유인태 의원이 이끌고 있는 당 오픈프라이머리 TF팀에서도 "언론플레이를 위한 자가발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원내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김 의장에게 "정계개편 과정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중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찌감치 준비된 것이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범 정동영계'로 분류되었지만 원내대표 출마 과정에서, 또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DY(정동영)와 나는 친구이자 동지"라며 계파성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김 원내대표는 이번 정 전 의장의 공항 영접에 나가지 않는다. 그의 측근은 김 의장의 공항 영접에 대해선 "코미디다"라며 냉소적인 관전평을 던졌다.
한편, 정동영 전 의장의 귀국 일, 박명광·박영선·민병두·정청래·최규식 의원 등 20여명 가량의 범정동영계 의원들이 마중을 나간다. 당초 당원 지지자 400~500명 정도를 동원하자는 아이디어도 측근들 사이에서 제시되었지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고 판단돼, 폐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