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가 일본의 새 총리가 됐다. 우리에겐 '앓던 이'였던 고이즈미가 물러난 자리에 그가 앉았다. 관심사는 아베가 정상적인 영구치가 될지 아니면 고이즈미와 다를 바 없는 '덧니'가 될 것인지 하는 점이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역사 망언에 대북 강경론을 편 인물들을 요직에 두루 앉혔다. 강경보수정책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아베는 고이즈미의 '덧니'다. 여기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특정 문제가 궁금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다. 한국과 중국이 정상회담 거부 사유로 삼은 게 바로 이 문제다.
일본 눈치 보는 우리 정부
청와대의 고민이 적잖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분주하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어제(26일) 기자브리핑에서 "한일간 외교실무선에서 비공식 차원의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말보다 행동이며 우리 정부는 일본의 행동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분주히 물밑조정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타결을 보려면 일본이 명분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이다.
청와대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 중국의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과 일본의 야치 쇼타로 외무성 사무차관이 지난 23일부터 도쿄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핵심 의제는 중일정상회담 개최 문제다.
고이즈미 이전의 일본엔 외교 관행이 있었다. 새 총리는 항상 한국을 제일 먼저 방문했다. 중일정상회담이 먼저 열리면 이 관행이 거듭 깨지면서 한일관계는 더 소원해질 수 있고, 일본의 자세는 더 뻣뻣해질 수 있다.
희한하게 됐다. 싸움을 건 주체는 일본인데 피해자인 우리가 조바심을 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게 현실이라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일본은 먼저 행동을 보일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일본은 중국과의 대화에서 아베가 적어도 내년 봄 춘계대제 때까지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성의 차원에서 내놓은 게 이것이다.
더더욱 납득할 수가 없다. 일본이 취하려는 행동은 '양보' 차원이다. 주변국의 요구가 정히 그렇다면 이 정도만 떼어 주겠다는 자세다. 식민주의 피해국의 요구에 승복하고 부복해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양보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고이즈미에 비해 진전된 양보라면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고이즈미라고 해서 철마다, 달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게 아니다. 1년에 한 번, 적어도 수개월에 한 번씩 찾았다. 그런데 아베는 시한을 내년 봄으로 설정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4개를 줬는데 아베는 3개만 주겠다는 얘기다.
한일정상회담 하려면 국민 설득부터
예단할 수는 없다. 청와대는 일본의 행동을 보고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일본이 내놓은 시한부 참배 자제를 '행동'으로 평가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국은 일단 일본의 '양보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지켜볼 때다. 청와대가 입장을 발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순리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고 넘어가자.
일본이 조삼모사식 태도로 나와도 참을 수 있다. 동북아 정세가 급하고, 실익을 더 많이 챙길 수 있다면 입술을 깨물 수 있다. 일본의 태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먼저 이 점부터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고이즈미가 우리 광복절에 버젓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 동북아 정세가 얼마나 크게 바뀐 건지, 또 그 사이에 우리의 실익이 얼마나 크게 늘어났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