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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신문사
신화란 무엇인가? 의미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신화에서 '신'은 종교적 절대자가 아니라, 한 민족의 건국 영웅이나 특정 집단의 정신적 숭배 대상인 민간 영웅을 가리킨다. 건국 시조나 특정 성씨의 탄생을 이끈 씨족신화의 주인공, 무속의 숭배 대상인 무신 등이 그들이다.

이 중 그동안 '무속'이라고 폄하된 서사무가는 민중의 생활과 함께 해 온 우리 민간신화다. 민간신화는 그동안 학계에서조차 '서사무가'나 '설화' 등으로 분류, 연구되어 왔다.

신화는 대체로 해당 민족의 흥망성쇠와 관련 있다. 역사에서 살아남은 집단의 신화는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신화로 전승되며, 패배한 집단의 그것은 더 이상 신화의 지위를 지니지 못하고 전설이나 민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락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설화와 민담의 많은 부분은 신화에서 원형을 취해 조금씩 변형되었을 것이다.

서사무가 역시 이러한 역사의 궤적을 밟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전설이나 민담과 달리, 서사무가에는 그 신화적 원형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민간신화는 대부분 무속신화인데, 굿을 할 때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본풀이'가 그것이다.

비록 지금은 서사무가라는 갈래로 흔적을 남기고 있으나, 각 '이야기'들이 모두 당당한 하나의 신화로 행세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이를 미신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고 말 것인가?

우리 조상들은 살면서 어려움에 처하면, 즐겨 굿을 행하곤 했다. 굿이란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상황에서,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신'을 찾아 해결을 청하는 절실한 행위였다.

무속의 효용도 그렇지만, 각 무당이 모시는 무신의 내력을 쫓다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민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굿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삶과 연관을 맺은 다양한 신들과도 만날 수 있다.

최근 우리 민간신화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면서, 신화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신동흔의 <살아있는 우리 신화>는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무속으로 치부되어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간신화'를 알기 쉽게 소개한다.

이 책은 우리 민간신화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각 항목에 대해 지은이의 설명을 곁들여 우리 신화에 담긴 갖가지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을 무척 흥미롭게 제시한다. 각 주제에 맞추어 모두 25편의 민간신화를 12개의 이야기(열두 마당)로 배치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무가가 대부분 '12마당' 혹은 '12거리'로 짜여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된다. 본론이라 할 '열두 마당'의 앞·뒤에는 '여는 이야기'와 '새로 여는 이야기'를 덧붙여, 우리 민간신화의 의미와 현재적 계승 양상까지 설명하고 있다.

신동흔의 책은 민간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한 각 신화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있다.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는 이야기'에서 지은이는 우리 민간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신화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경외감을 품고 소중히 간직하며 가꾸어 온 신성한 이야기가 신화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엮어내는 서사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본원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과 욕망의 상상적 분신인 신화적 주인공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한편 삶을 두르고 있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분투를 거듭해왔다.

세월의 가시밭길을 헤쳐 현재에 이른 우리 민간신화는 그러한 몸짓의 소산이다. 누군가 하면, 소외되고 못 가진 이들의. 하지만 삶의 주역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나는 민간신화에 담긴 그 몸짓이 우리 민족정신의 참되고도 본원적인 표상이라고 믿고 있다.
(5∼6면)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이 민족의 정신적 지표가 되듯, 민간신화의 주인공들 역시 민중의 삶과 지속적으로 함께 해 왔다. 특정 신화를 공유하는 전승 집단의 구성원들은 신화의 내용과 주인공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신화 자체를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항상 소중히 여기며, 신화가 후대에 지속적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하여 신화적 주인공이 엮어내는 삶에 자신들이 지향하는 본원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신화의 주인공과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네 민중이 찾고자 했던 '우리 민족정신의 참되고 본원적인 표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삼신할미'의 점지와 보호 아래 세상에 태어났고, 누가 죽으면 죽은 이를 저승까지 잘 인도하라고 '저승사자'에게 상을 차려 잘 대접하기도 하였다. 민간신화의 주인공들이 우리 생사를 주관한다고 믿어, 이들을 극진히 섬기고 대접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병들고 힘들 때 무속에 의지했듯이, 우리 민간신화는 소외되고 가진 건 없지만 삶의 주역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삶에 위안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지은이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우리 민간신화의 대다수 주인공들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었다. 서구 신화에서 신은 그저 신일 뿐 본래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로 그려졌지만, 우리 신화의 주인공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갖은 고난을 겪고 신화적 존재가 되어 결국에는 하나의 신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 민간신화에는 인간이 되어 인간 세상의 삶을 영위하는 신적 존재가 있고, 인간의 삶을 살다가 신이 된 존재가 있다. 신화 속 신들은 상당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행적을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이미 자신들이 비범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셈.

그들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행위는 때로는 부모님을 찾거나,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약을 구하거나, 저승사자를 소환해 인간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등 목적을 수반한다.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기에 온갖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마침내 목표를 이루고 인간의 삶과 연관된 역할을 맡은 신으로 자리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간신화는 주인공의 시련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지만, 그 신들이 인간과 굳게 연결이 되어야만 비로소 신화적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우리 민간신화에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며, 각 신은 인간의 삶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며 다른 신들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물론 민간신화에서 여러 신들은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존하기도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각 주제에 맞춰 여러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인간 세상에 존재한 다양한 신화적 존재를 접하게 된다.

아주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이를 체계적으로 풀어가는 견해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아마 민간신화에 대한 지은이의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해야 설명될 터.

무가 전승이 대체로 그렇듯이, 우리 민간신화들은 오랫동안 구전 형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학자들이 꾸준히 채록했다. 이제 대부분의 자료를 기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들이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원형에서 탈락되기도 하고, 다소 덧붙여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모든 구전 자료가 그렇듯이 서사무가도 전승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변형을 겪었지만,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화가 제기하는 인간과 삶의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살아있는 우리 신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민간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민중의 삶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승된 민간신화에는 당대 사람들이 소망했던 문화의 원형질이라는 의미가 있다.

신화의 주제는 오늘날 우리가 궁금해 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답변을 지니고 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천지창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세가>는 혼돈에서 개벽으로 열린 세상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간에게 새 생명을 잉태해 주는 삼신할미가 된 <제석본풀이>의 주인공인 당금애기의 사연도 있다.

인간의 질병과 생사에 대한 이야기가 '손님마마'와 '저승사자'의 존재로 표현되어 있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위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온갖 어려움을 겪고 마침내 저승의 신으로 좌정한 <바리데기>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하늘도 땅도 아닌 머나먼 신성의 세계인 원천강에서 부모님을 만나는 '오늘이' 이야기는 제주도 신화인 <원천강본풀이>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서천꽃밭에 핀 온갖 꽃으로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이공본풀이>의 '한락궁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새삼 되새길 수 있다.

저승차사가 된 '강림도령' 이야기는 태어난 순서대로 죽지 않고 사람들의 수명이 뒤죽박죽이 된 사연을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지은이는 백두산이나 한라산을 지키는 신들을 통해 그곳이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게 된 사연을 전한다. 아울러 우리 민간신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 막중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며 "신화의 주역은 여성"이라고 선언한다.

저자는 우리 민간신화가 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와 동시에 신성(神性)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민간신화의 신성은 능력보다는 사연에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당겨 그들로 하여금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 거울로 삼고 등불로 삼게끔 하는 힘이 있는 사연이 신화가 된다는 것.

민간신화의 주인공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는 버림받고 박해받는 이들의 뼈아픈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다. 민간신화가 오랫동안 민중과 함께 호흡하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민중에게 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렇듯 숨 가쁘게 풀어놓은 민간신화 이야기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하여'라는 항목에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저자는 우리 민간신화가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소개되는 현실을 제시한다. 민간신화의 세계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들의 성격에 대해 세세히 구분하고 요약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본문과 표지 안쪽에 제시된 '우리 신화 배경 지도'에서, 인간과 천상계를 하나의 연속된 세계로 생각한 옛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우리 민간신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은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현실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간신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얻기를 희망한다.

살아있는 한국 신화 -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오래된 이야기

신동흔 지음, 한겨레출판(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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