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뭘 하는 곳인가. 언뜻 생각나는 대답은 '책을 읽는 곳'이다. 그렇다면 도서관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사면으로 빼곡히 찬 책들. 서가에 꽂힌 다양한 잡지들. 널찍한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대충 이런 그림이 그려지는데 사전에 나오는 도서관의 정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서관[圖書館]: [명사] 온갖 종류의 도서, 문서, 기록, 출판물 따위의 자료를 모아 두고 일반이 볼 수 있도록 한 시설
그런데 도서관은 이렇게 책이나 문서, 자료 등을 읽기만 하는 곳일까.
모임이 있다고요? 도서관으로 오세요
문학 소녀의 꿈을 버리지 않은 아줌마들이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누고 자신의 습작품을 발표하려고 할 때, 또는 취미가 같아 모이게 된 동호인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자신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 토론하려고 할 때 어디를 가면 좋을까.
카페? 커피숍? 언뜻 떠오르는 장소들이다. 하지만 그런 곳엘 가려고 하면 먼저 만만찮은 커피값에 신경이 쓰이고, 다음으로는 조용한 대화나 열띤 토론을 방해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면 좋을까. 정답은 도서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독후감을 발표하거나 독서 토론을 하는 경우에는 도서관이 그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교양 있는' 모임 말고 일반인들이 사적으로 모임을 가지려고 할 때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아마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 미국 버지니아 해리슨버그 메사누튼 도서관에서는 사랑방과 같은 회의실이 여러 개 있어 일반인들에게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 회의실은 덴튼 패밀리 재단에서 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바바라 부시(메사누튼 도서관 마케팅 디렉터)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나이나 인종 그 밖의 다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습니다. 회의실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서 취미활동을 할 수도 있고,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도 있고, 자녀들이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거나 숙제를 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인 것이다.
또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뭔가를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들도 도서관이 제공하는 이 회의실을 이용하여 배울 수 있다. 물론 다 공짜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전공의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할 때 장소가 없어 커피숍이나, 빵집, 레스토랑을 전전했던 기자로서는 이렇게 일반에게 장소가 제공된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실제로 나는 메사누튼 도서관에서 개인지도를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바로 아동실 옆 빈 방에서 내가 노트북을 펴고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 때 양해를 구하고 들어온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한 명은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미국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외국인이었다. 이들은 기자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수업을 했는데 나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도서관은 사랑방!
이와 같이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 도서관에서도 이런 장소가 제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장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든지 모임을 가질 수 있고, 모임이 끝난 뒤에는 책을 읽거나 빌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비디오나 DVD를 빌려갈 수도 있고.
우리 도서관에서도 혹시 잠자고 있는 빈 공간이 있다면 이렇게 시민들에게 공개하여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메사누튼 도서관이 이렇게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는 데에는 '북클럽'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북클럽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일종의 독서 동아리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북클럽은 많이 있을 테지만 메사누튼 도서관의 북클럽은 좀 더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즉, 장르별로 구별이 되어 '픽션 북클럽'과 '미스터리 북클럽'이 있다.
그리고 장르 구별을 하지 않는 일반적인 북클럽으로는 '루레이 북클럽'과 '쉐난도 북클럽'이 있는데 이 북클럽에서는 자신들이 읽은 좋은 책을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추천하는 모임이었다.
이러한 북클럽은 만나는 요일과 시간이 각각 달라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북클럽에서 활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야간에 모이는 북클럽도 있어서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북클럽'도 있어 굳이 도서관에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집이나 직장에서 받아볼 수 있다. (온라인 북클럽은 메사누튼 도서관만의 북클럽이 아니고 온라인 사이트와 링크되어 있는 북클럽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도서관 로비에 있는 게시판을 보면 이곳 해리슨버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도서관이 사랑방인 셈이다.
사랑방에서는 사랑도 이루어지는 것일까. 도서관을 찾았던 날,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희한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다가 일어섰다. 아내가 일어서자 남편도 일어섰는데 이들은 앞뒤로 포개져(?) 도서관 안을 다정히 걷기 시작했다. 나이 든 이들의 도서관 '밀착데이트'는 나 같은 이방인이 보기에는 확실히 민망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바짝 붙어 걷던 이들이 도서관 안에서 거침없이 키스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들에게는 키스가 우리의 악수 정도 밖에 안 되는 스킨십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남녀의 입술이 공공 장소에서 뜨겁게 닿는 모습은 내게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급히 달려가 이들의 뒷모습을 찍은 뒤 (키스 장면은 너무 흔들렸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당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Sure!"
확실히 이곳 메사누튼 도서관은 학교 시험이나 고시 공부, 또는 책을 읽고 빌리는 일을 주로 하는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