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29일 오전 10시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자율선택에 따른 국립대학 법인화’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열려고 했다. 올 가을 국회에 ‘국립대학법인의설립,운영에관한특별법’을 제출하기 위한 사전 행사로 계획된 공청회다.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원점에서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가 아니었다.
주제발표자는 공청회 현장에서 자신도 불과 얼마 전에야 공청회 발표를 부탁 받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청회 2∼3일 전에야 공청회 개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항의했다. 게다가 교육부는 지방 사람들이 참석하기 힘든, 추석 연휴를 앞둔 29일 오전 10시에 공청회를 열었다.
전국 국립대를 더 이상 국립대가 아닌 상태로 전락시키겠다는 혁명적인 조치를 감행하면서 절차는 요식 행위였다. 강행을 전제로 하고 거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자들을 들러리 세운 것이다.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국립대 법인화는 서울대를 제외한 모든 국립대가 반대하는 정책이다. 시장화 진영과 경제주의 진영을 제외한 교육운동진영 전체가 법인화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 진작부터 우려해왔다.
당장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구조조정의 칼날을 맞게 될 교수와 교직원들은 강력히 반발해왔다. 다수의 반대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공청회를 강행했고 예정됐던 파행사태가 이어졌다.
요식 절차인 공청회를 막던 교수, 공무원 50여명 전원 연행
국립대 교수들과 국립대 교직원노조, 교수노조 그리고 교육단체 회원 등 50여명은 아침 일찍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공청회 무효를 선언했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아니라 정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로서의 공청회를 반대하며 공청회 진행을 막았다.
그러자 교육부는 경찰을 투입해 50여 명 전원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교육부는 공청회를 강행하려 했지만 결국은 무산됐다. 경찰폭력사태에 위기감을 느낀 토론자들이 발표를 미뤄 교육부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원했던 최소한의 민주적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가 그렇게도 민주적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내용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국립대 법인화라는 중대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관련 당사자 다수가 반대한다면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정책 실행을 위한 공청회는 그 다음에 열려야 한다. 만약 이런 절차가 귀찮다면 껍데기뿐인 요식 행위로서의 공청회 자체를 열 필요가 없다. 교육부는 민주적 절차를 빌어 민주주의의 정신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립대 비율과 고등교육 예산마저도 더 이상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인이 된 국립대는 이사회가 책임 경영하게 된다. 경영원리가 지배하는 국립대에서 공공성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독자 생존하게 된 국립대는 한편으론 구조조정으로 경비를 절감하고, 또 한편으론 수익사업과 등록금 인상으로 수입을 늘리려 할 것이다. 차후 신규 채용되는 직원에겐 사립학교교직원연금이 적용된다. 공무원의 지위를 잃어버린 교직원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왜 서울대만 국립대 법인화에 호의적일까?
유독 서울대만 국립대 법인화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국립대 법인화의 본질을 정확히 말해준다. 국립대 법인화는 기존의 대학서열체제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 본질의 내용이다. 대학서열체제에서부터 비롯되는 교육의 붕괴상은 확대재생산 될 것이다. 그 경우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의 효과로 주장하는 교육경쟁력 향상은 있을 수 없다.
국립대 법인화는 학교에 책무성 평가를 통해 시장 경쟁을 강요하게 된다. 초중등 과정에서도 책무성 평가를 받는 자율경영학교가 늘어나고 국립대마저 법인화 된다면 한국 교육은 완전히 시장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시장은 그 속성상 공공성과 상반되며, 양극화와 자원의 편중을 부른다. 뿐만 아니라 돈이 안 되는 기초 학문 분야는 고사하게 된다. 현재 한국 교육의 병폐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교육부는 경찰까지 동원해가며 강행하고 있다. 일단 법인화해 국립대 체제가 무너져버리면 차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다시 돌이키기가 매우 힘들다. 참여정부는 임기가 다 된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정책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교육부문에서 지금 건너려 하는 강은 되돌아올 수 없는 파탄의 강이다. 참여정부는 국립대 체제 해체가 진정 공교육의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사죄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