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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의 재료인 '마' 혹은 '대마'라고도 부르는 삼. 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수확한 삼을 삶아 껍질을 벗겨내 햇볕에 말렸다가 틈틈이 가늘게 째서 실처럼 이어 놓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물레를 돌리는 등의 오만 가지 절차를 거쳐 나온 삼베 실을 가지고 베틀 앞에 앉아 날줄 씨줄 엮어 비로소 옷감이 될 수 있는 삼베를 짜내는 것입니다.
"여럿이 째야 쉬운디, 혼자 할라니께 힘이 더 드네유…."
삼베길쌈 마을을 찾아갔을 무렵, 할머니는 햇볕에 말린 삼을 째서 두 가닥으로 이어가는 작업, '삼 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삼 삼기 작업을 하려면 무릎을 많이 이용합니다. 가늘게 짼 두 가닥의 삼을 무릎에 올려 놓고 손바닥에 침을 묻혀 비비는 작업이니 무릎이 성할 날이 없다고 합니다.
"이거 하다 보면유, 무릎에 피멍이 들고 굳은 살이 벡힐 정도가 돼유…. 안 해 본 사람은 몰러유. 무릎도 무릎이지만 팔이 떨어져 나가유, 이게 월메나 힘든 일인지 모를꺼유…."
두 가닥을 잇기 전에 치아를 이용해 먼저 삼을 가늘게 째는데 할머니는 치아까지 성치 않아 그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할머니의 치아는 거의 없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 틀니를 하고 있었는데 틀니를 지탱해 주는 치아마저 삼을 삼다가 빠져 버렸다고 합니다.
"틀니를 껴넣야 허는디 엄칭이 비싸데유, 몇 백은 있어야 된데유… 자식들유? 지들 먹고 살기두 힘든디 워치케 손을 내밀겠슈?"
"1년에 150자, 한창 땐 300자도 넘게 짰쥬"
할머니는 한 해에 150자, 4필의 삼베를 짜고 있는데 한창 젊었을 때는 그 두 배인 300자가 넘는 삼베를 짰다고 합니다.
인조섬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삼베옷은 외출은 물론이고 일할 때도 입었던 평상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무렵 일 년 내내 죽어라 삼베를 짜봤자 쌀 한 가마니도 못 얻어먹었지만 지금은 150자를 짜면 180만 원, 쌀 열가마니 값이 더 나옵니다.
삼베 가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대부분 저 세상으로 갈 때 입는 옷인 수의를 만드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면 부모나 자손들에게 좋다는 윤달이 들어 삼베길쌈 마을로 수의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큰 수입이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삼베길쌈 마을에는 신난영 할머니를 비롯해 7명의 할머니들이 옛 솜씨를 발휘해 삼베를 짜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한 분이 1년에 짤 수 있는 삼베는 150자로 한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삼베길쌈 마을에서는 대부분 소를 먹이고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난영 할머니는 가진 게 없습니다. 집집마다 서너 마리씩 먹이고 있는 소 한 마리는 고사하고 농사 지을 땅조차 없다고 합니다. 마을 산 중턱에 자리한 두 칸짜리 오두막집의 터조차 다른 사람의 소유라고 합니다.
"깔구 앉아 있는 이 땅도 넘 땅유. 땅 한 평 읎슈…. 그냥 농사철이 되믄 넘 일 봐주며 사는디 요즘은 그것도 못허구 있슈…."
날품을 팔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데 올해는 심장병 때문에 그마저 일손을 놓았다고 합니다. 일을 하면 얼굴이 붓는다고 합니다.
"새끼들 용돈이라도 줄 수 있으니 좋쥬"
신흥리 마을로 시집와 길쌈으로 청춘을 보내며 온갖 농사일과 삼베길쌈으로 자식들을 길러내고 이제 늙은 몸으로 다시 삼베길쌈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신난영 할머니. 그 지긋지긋한 세월 속에서 심장병에 치아마저 다 빠지고 틀니조차 해 넣을 여건이 못 돼지만 할머니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두 삼베 짜서 목돈을 만질 수 있으니께 좋네유, 손주 새끼들 용돈이라도 줄 수 있구…."
할머니는 환하게 웃습니다. 다 빠진 치아를 손으로 가리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 환한 웃음은 힘겨운 세월들을 견뎌낸 힘인지도 모릅니다.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식들 찾아오는 재미로 살쥬. 명절이 돌아 오믄 사람 사는 거 가튜…. 내 세상이쥬. 자주 만났으면 좋겠슈."
덧붙이는 글 | 신난영 할머니는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가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