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골치부터 아파 오게 만드는 이 낱말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힘들어했었나.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은 지금도 문법이란 괴물 때문에 늦은 밤까지 학원과외를 받아야 하고 몰려드는 잠과 싸우며 눈꺼풀을 들어 올려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법이 아름다운 노래라니···. 하여튼 그런 이상야릇한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에게 문법은 주어니 동사니 1형식이니 2형식이니 하는 영문법으로 다가옵니다. 그저 참고서의 설명을 달달 외었을 뿐인 국어수업에 문법 강의는 불필요한 시간낭비에 불과하였으니, 영문법이 곧 문법이고, 문법이란 영어라는 외국말에 존재하는 언어 규칙과 쓰임새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언어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소위 통사론에 해당하는 협의의 규칙쯤으로 이해됩니다. 문장을 토막토막 잘라낸 후, 관사와 명사 혹은 대명사로 이루어진 주어를 찾아내고 그 주어의 행위에 해당하는 동사, 그 다음에는 동사를 꾸미고 있는 형용사며 부사며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관계절인 경우가 대부분인) 또 다른 문장을 찾아내어 나무 그림(문장의 트리구조)을 그려야 안도할 수 있었던 통사론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었던 것이 우리가 만난 문법이었습니다.
문법이 아름다운 노래임을 가르쳐준 선생님
집안 사정으로 상업학교에 진학하였던 기자가 같은 계열의 대학 진학 혜택을 포기하고, 골치 아픈 그 문법이란 것을 공부해야하는 어문학부에 지원한 때를 생각하면, 기자에게는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계십니다.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2학년 때의 국어를 담당하셨던 한영만 선생님,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도 모르지만 기자가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은사님의 이름입니다.
30여 년 전 어느 날, 몹시 아팠던 까까머리 소년은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하필이면 그 소년에게 질문을 던지시다니….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소년에게 선생님의 호통은 추상같고 벼락같았습니다. 마음 여린 소년은 울고 말았고 사내가 찔찔 짠다며 드신 선생님의 회초리는 매서웠습니다. 소년은 혼수상태에 이를 만큼 오래도록 아팠고 마음에는 아물지 않는 상처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다시 어느 날, 선생님은 하교 길에 소년을 불렀고 서글픔과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두 손을 잡아주시며 "많이 아팠지,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외롭다고 가난하다고 용기를 잃으면 그건 더 나쁜 거야,선생님은 널 아끼고 사랑한단다” 소년은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때국물이 줄줄 흐르는 눈가를 손수 닦아주시며 선생님은 소년을 자신의 하숙집으로 데려가 라면을 끊여주셨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의 하숙방은 소년의 공부방이자 놀이터이고 구수한 옛 이야기 흘러나오는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이름씨(명사), 대이름씨(대명사) 등의 체언과 형용사(그림씨), 부사(어찌씨) 등으로 이루어진 용언 등부터 시작하는 문법 공부는 마냥 재미있었습니다.
국문법의 기초가 조금씩 쌓이면서 소년에게는 영문법과 국문법의 작은 차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말에서 형용사는 동사형 어미 ‘~하다’와 함께 서술어를 구성하는데, 영어에서는 동사형 어미를 be동사가 대신한다든지 우리의 관형사와 비슷한 영어의 관사 따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던 것이지요.
까까머리 소년이 생판 접해보지도 않은 다른 나라 말인 프랑스어를 공부하겠다고 겁 없이 대든 사연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이 소년에게 우리말의 체계적 우월성에 눈을 뜨도록 하였다면 대학 시절에 만난 선생님은 이제 청년이 된 소년에게 언어의 깊은 매력에 흠뻑 빠지도록 인도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쓰는 ‘말’의 세계, 언어의 내면 깊숙이 흐르는 철학과 예술의 정화들을 경험하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문학평론가로 유명하신 정명교(필명 정과리) 교수님이 그 분입니다. 비록 그분의 비평의 경향이 이제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편에 서있다 하여도, 그분은 언어학이란 생소한 세계를 제게 보여주셨고 파롤(Parole단순하게 설명하여 ‘개인적 언어’)과 랑그(Langue파롤과 상대하여 ‘사회적 언어’)의 차이를 시작으로 하여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 스위스의 언어학자, 언어학뿐이 아니라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방면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의 위대한 공적 속에 머물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을 가르고 시니피앙(記標)과 시니피에(記意)를 구별하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였고 많은 작품 속에 녹아있는 빛나는 문체에 넋이 나갔습니다. 종이에 박힌 글자(언어)에서 시대가 꿈틀거리고 열정이 폭발하고 슬픔이 복받쳐 울며 뛰쳐나왔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글자에서 음험한 미소를 짓고 탐욕에 미친 세상이 한 판 굿을 벌였습니다. 절망과 희망이 서로 핏대를 세우며 아귀다툼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말은 이제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서서 세상과 시대와 그 안의 인간을 가두기도 해방시키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문법은 말을 아름다운 노래로 만드는 음표
당대 프랑스의 지성 에릭 오르세나가 저술한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는 기자가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마법과도 같은 언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책입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그 환상의 지하세계 같은 언어의 궁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전달과 소통의 기능을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고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주재자임을 일깨워줍니다.
규칙에 얽매인 문법학자 자르고노스 장학관이나 의사소통 이외의 기능을 말살하려는 섬의 통치자 네크롤에게 언어는 꼭 필요한 몇 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라 퐁텐의 우화를 예로 들며 수업을 진행하는 로랑생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언어는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즐겁게 느껴야할 대상이자 그 자체로 완전히 자족적인 체계입니다. 또한 말을 잃어버린 주인공 ‘잔’에게나 오빠 ‘토마’에게 말을 찾도록 도와주는 앙리에게는 음악이고 음악의 리듬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형식을 빌은 이 책에는 단어들의 도시가 등장하고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단어들이 인간의 선택을 기다리기도 하고 너무 남용하여 아파하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형용사를 파는 상점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단어들이 치장을 하고 멋을 부리며 자신을 골라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단어들의 공장에서는 제 맘에 드는 단어들을 마음껏 구하고 시제일치기며 전치사 분배기를 통해 짧거나 길거나 한껏 공들인 문장을 완성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그래서 단어들의 섬인 그 곳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작가들로 생텍쥐페리, 마르셀 프루스트, 라퐁텐을 등장시키는 즐거운 의뭉스러움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언어가 단지 아름다움의 대상만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위대한 작가와 문장이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인지 일깨워줍니다. 모름지기 언어란 진실과 자유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작가는 진리를 직업으로 택한 사람이란다. 진리의 가장 좋은 친구는 자유지."(책 138쪽)
"위대한 작가란, 유행에 신경 쓰지 않고 진실을 탐구할 목적으로만 문장을 만들어 내는 사람."(책 141쪽)
덧붙이는 글 |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에릭 오르세나 저/정혜용 역/미디어2.0/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