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른한 주말 오후, 이제 저도 아저씨가 다 되었는지, 여느 아버지들처럼 주말은 잠과 함께 보내기 일쑤입니다. 마침 주말이고 오후 가을 햇살도 따사로운 터에 거하게 낮잠을 자려는 순간 어머니께서 저를 불렀습니다.
전 어머니의 다리가 아직 불편하신 관계로 어머니의 충실한 기사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께선 요즘 ‘사모님’이라는 개그프로그램에 재미가 들리셨는지 어설프게 사모님 흉내를 내시곤 합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인천의 소래포구로 가자고 하실까요?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보다 나른한 오후, 꿀맛 같은 낮잠도 못 자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효자란 타이틀로 KBS까지 출연했는데 말씀 잘 들어야죠. 금세 김기사가 되어 어머니를 소래포구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소래포구에 다녀온 뒤, 전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기사를 보고 왜 어머니가 소래포구로 가자고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미소와 함께요.
늦게 배운 오마이뉴스가 더 무섭다?
“어머니, 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로 선발 되었어요”
“뭐? 오마니? 그게 뭐니?”
지난 어머니께선 제가 <오마이뉴스>의 인턴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게 뭐냐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인터넷에 문외한이신 어머니는 인터넷 신문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덕에 TV 출연도 하시고, 제가 기사를 쓰는 것이 대견스러우신지 이제는 어머니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내가 쓴 기사들만 보시겠지’ 하는 생각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이미 어머니께서는 오마이뉴스의 마니아가 되셨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이러이러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요” 하고 말씀 드리자, “에이, 그거 그제 오마이뉴스에 보도 되었더라. 검토해보렴” 이 정도 까지 내공이 쌓이신 겁니다.
갑자기 소래포구를 가자고 하신 것도 9월 12일 김혜원 기자님의 ‘우리집 밥도둑 꽃게 무침 나가신다!’ 기사를 보신 까닭입니다. 기사를 보며 정말 먹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막상 소래포구까지 갔다 오니 ‘기사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를 느꼈습니다.
김 기자님 덕분에 우리 집 밥도둑도 꽃게 무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을 잊으신 어머니 덕에 근 2주간 밥상에서 밥도둑님만 뵙게 돼서 그 좋아하던 꽃게 무침이 이제 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꽃게 무침이 다 떨어지자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또 소래포구 갔다 올까?”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김 기사 외에도 피해자 발생, 각종 피해사례 속출!
사는이야기 기사를 보시고 ‘전어 먹으러 가자’, ‘야콘 냉면 먹으러 가자’ 하시며, 어머니의 잦은 출타로 인한 김 기사의 ‘쉴 권리 침해’ 피해가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의 아버지께서도 피해자 대열에 합류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50년이 넘는 인생, 가장 곤란한 순간을 맞이하게 해주었던 그 기사는 이승숙 기자님께서 9월 22일 작성하신 ‘우리 남편이 만든 '족발', 드셔보실래요?’입니다.
제목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이 기사 덕에 아버지께서는 졸지에 족발 요리사가 되셨습니다. 족발을 들고 어설픈 솜씨로 칼질 하시고, 장국을 우려내시려고 재료들을 이리 섞었다 저리 섞었다 하시며, 맛을 보신다고 연신 숟가락을 입에 대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저 족발 향기만 나는 족발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우리 가족은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먹은 족발 중 가장 맛있다는 듯이 그렇게 행복하게 먹었습니다.
남편이 만든 족발도 드셔보고자 했던 어머니의 욕심 덕에 우리 가족은 맛없는 족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
<오마이뉴스> 덕에 우리 집의 두 남자들이 항상 곤란해지곤 하지만 어머니의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 집의 활력소가 됩니다.
여자가 없는 우리 집, 어머니께선 어머니의 역할도 하셨다가, 집안의 귀여운 막내딸 역할도 하시고, 또 저의 누나 역할까지도 해주십니다. 그만큼 어머니께서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십니다.
올해 불현듯 찾아온 퇴행성 관절염으로 육체적, 정신적 큰 고통을 겪으셨을지라도 어머니께서는 절대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 웃음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의 웃음을 잃게 하는 기사가 또 올라왔네요. 사진 속의 빠알간 대하들이 강렬하게 ‘날 먹어줘. 나 맛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김용철 기자님의 ‘하얀 소금밭에 핀 빨간 대하꽃’ 기사. 이 기사 덕에 저는 이번 연휴 때도 맘대로 쉬지 못하고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한 번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주말과 연휴, 쉬는 날에는 마음껏 쉬고 싶은 김기사는 정말 괴롭습니다. 하지만 운전을 하는 동안 계속 웃음이 나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