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간 남현수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서는 공항으로 들어섰다. 출국수속을 밟은 남현수는 공항매점에서 구입한 커피 한잔을 마신 후 비행기에 올라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서는 눈을 감았다. 김건욱이 준 비행기표의 좌석은 모두 퍼스트 클레스(일등석) 이어서 이코노믹 클레스(일반석)만 이용해 보았던 남현수로서는 여간 안락한 것이 아니었다. 남현수는 다시 눈을 뜨고 창 밖으로 비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남현수는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지금이라도 비행기에서 내릴까?’

남현수의 흔들리는 마음을 마치 다잡기나 하듯이 비행기는 활주로로 진입해 서서히 속도를 높여 케냐로 가는 중간 경유지인 방콕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올랐다. 약 3시간을 난 후에야 방콕에 도착한 남현수는 환승수속을 밟아둔 후에 공항내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으며 대충 저녁을 때웠다. 남현수의 머리 속에서는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대처상황이 바쁘게 돌아갔다.

‘마르둑은 분명 다시 그 사이코메트리 증폭기라는 걸 사용하려 하겠지. 일단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를 만나야 해. 외딴 곳에서는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낯선 곳에서 내 마음대로 장소 이동이 가능할까?’

남현수는 먼저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우편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럼요. 보는 즉시 우체국에 가서 처리했습니다.”

남현수는 조교의 너무나 쉬운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영수증 가지고 있지? 등기 번호 좀 불러봐.”

“예?”

조교는 남현수의 이상한 요구에 상당히 놀란 말투였다. 잠시 영수증을 확인하느라 꾸물거린 조교는 등기번호를 불렀고 남현수는 그 번호를 일일이 받아 적었다. 13자리의 숫자는 틀림없는 등기 번호로 보였다.

“수고 했어.”

남현수는 우체국의 콜센터 전화번호도 적어 놓고 있었다. 케냐에 도착하면 이 번호로 등기의 처리여부를 우체국에 확인할 터였고, 역시 적어 놓은 언론사의 전화번호로 등기의 수취여부까지 확인해 볼 터였다.

‘아니야 내가 부질없는 짓을 한 것일 수도 있어.’

남현수는 케냐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 금방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순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둑이 아직도 지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은폐할 수 있는 배경이라면 남현수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는 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케냐로 가기까지 모든 판단을 남현수에게 맡기다시피 하는 허술한 상황 속에서 대단한 음모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면도 없지 않았다.

남현수는 승무원이 가져다 준 안대를 쓰고 잠을 자두려 애를 썼다. 몸을 뒤척이던 남현수가 겨우 잠이 든 다섯 시간 후, 비행기는 연착 없이 새벽공기를 가르며 케냐 나이로비의 죠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남현수는 피곤함을 이기며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챙긴 후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였다. 입국심사대는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고풍스러운 정경이었다. 입국 목적을 묻는 행정관의 질문에 남현수는 짤막하게 ‘관광’이라고 대답했다. 막상 케냐까지 오기는 했지만 사전에 누가 마중 나와 있겠다는 전갈도 없었던지라 남현수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러나 남현수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금방 눈에 익은 한글 푯말을 볼 수 있었다.

<남현수 박사님 환영합니다.>

푯말을 들고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김건욱이었다.

덧붙이는 글 | <머나먼 별을 보거든>은 추석연휴가 끝난 10월9일에 이어집니다. 편안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