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야외공연장인 하늘극장에서 지난 30일과 10월 1일 이틀간 공연된 창극이 관객들의 대호평을 받았다. 민간단체인 한국창극연구회(아래 창극연구회)가 국립극장과 공동으로 주최한 마당창극 <춘향>은 그 동안 좀처럼 깨지 못한 창극의 벽들을 과감하게 허물면서 새로운 창극운동의 비젼을 제시했다.
창극연구회의 미니멀한 창극은 이번 가을 공연에 앞서 지난 8월 미국 아틀란타에서 먼저 <춘향>을 선보였다. 서울시 무대예술지원과 문화예술위원회 전통예술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이번 작품은 국립창극단을 비롯해서 몇몇의 공립 창극단들이 그 동안 응당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던 대형 무대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창극발전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것은 창극의 대명사 안숙선 명창이 명성과 몸을 던지는 희생이었다. 젊어서는 춘향, 심청 등 주인공만 해왔고 연륜이 쌓여서는 도창 정도의 품위와 고고함을 줄곧 견지해온 안숙선 명창은 이번 젊은 제자들의 작품에 흔쾌히 참가하여 전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안 명창은 이 작품에서 물론 도창의 역할을 기본으로 하면서 월매역, 농부가 대목에서는 술 취해 비틀거리는 수다스런 아낙 역할 등을 열연해 그간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깨뜨렸다. 거기에 서정금, 남상일 등 창극 재간동이들도 역시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창극의 맛과 흥을 돋우었다.
마당창극 <춘향>은 공연방식도 독특했다. 먼저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올라 단가 ‘사철가’로 판소리의 맛을 객석에 전달하고는, 뒤에 대기하던 악사들과 함께 구음시나위를 구성지게 연주했다. 물론 시나위단에는 남상일의 가야금, 이몽룡역을 맡은 안현빈의 징 연주가 가세했다.
대본과 연출 그리고 변학도 등 출연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조영규 연출은 “극의 원칙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단원 개개인의 끼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요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것은 오래전 협률사나 원각사 방식의 창극이 생기기 전에 변형 판소리처럼 연행된 기록에서 기원한 것으로, 그야말로 온고지신의 방법론을 채용한 것이다. 그리고 절묘하게 그 오래된 방식이 현대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힌 것이다.
본래 소리꾼을 만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이상을 한 자리에서 소리를 해야 하는 소리꾼으로서는 단지 판소리 하나만으로 판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재주를 섞어서 좌중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 4대 요소 중에 ‘발림(동작)’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단지 요즘 와서 젊은 소리꾼들에게 그 전통이 단절되어가는 안타까움이 있을 따름이다.
창극연구회의 미니 창극 <춘향>은 마치 현대연극의 미니멀한 상징구조를 보는 것 같은 구성을 갖는다. 무대 세트라고는 동헌을 상징하는 2단 받침대와 의자 하나뿐이다. 국공립창극단의 작품들이 많은 인원과 거대한 세트를 동원하고도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은데, 아예 없다시피 한 창극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기량과 연출의 아이디어를 통해 극의 효과를 충분히 담아냈다.
특히 안숙선 명창의 다재다능, 천변만화의 역할에 관객들은 배꼽을 쥐어 잡다가도 눈물을 찍어내야 했다. 정말 어린 고주리, 정보경 두 춘향의 연기에 사랑가가 실감나고, 새롭게 발견한 이몽룡 임현빈에게서는 젊은 이몽룡의 맛이 잘 살아났다.
보통 100 여명 규모의 출연진과 스태프가 동원되는 대형 창극과는 달리 창극연구회 창극은 배우 겨우 7명, 악사 3명 그리고 스태프 7명이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몇 가지 역할을 소화해냈고, 창극에서는 드물었던 1인 다역의 연기에 관객들은 흥미로워 했다.
이틀째 이번 작품을 보고 있다는 한 관객은 “안숙선 명창이 망가지는 처음 본다. 다음에 또 언제 볼 지 몰라서 이틀째 계속 오고 있다. 티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중견 연기자들이 코믹한 배역을 잘 소화해서 작품 자체가 살아나듯이 창극에서도 고정관념을 깨는 의외성으로 인해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고 다음에도 이번처럼 유쾌하고 흥겨운 창극을 계속 만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연이 끝난 후 만난 안숙선 명창은 "내가 망가져서 창극이 산다면야 얼마든지 망가져도 좋다. 내년이면 소리를 시작한 지 50년이 되고 그 세월의 많은 부분을 창극과 함께 보냈다. 내 선배, 스승들이 창극에 몸바친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내 삶은 창극발전을 위해 당연히 모두 쏟아부어야 마땅하다. 앞으로도 제자들을 격려하고, 창극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할 것이다"고 말해 주변을 잠시 숙연케도 하였다.
한편, 이번 창극이 마당극 형식을 일부 취하고 있는 까닭에 프로시니엄 극장의 엄격한 통제가 없어 관객들은 자유로운 관람 분위기를 만끽하기도 했다.
조영규 연출은 “국립창극단을 대표로 해서 만들어지는 대형창극도 블록버스터형 라이센스 뮤지컬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지만, 창극 저변을 좀 더 효율적으로 넓히기 위해서는 소규모 창극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도 미니창극, 마당창극을 지속적으로 만들 것을 다짐했다.
비록 작지만 이런저런 재미를 충족시키는 창극연구회의 <춘향>은 연일 많은 관객들로 넘쳐났다. 600명 정도를 수용하는 하늘극장에 마당까지 멍석을 깔아 이틀째에는 800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 주최측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누군가 전통을 오래된 미래라고 하였던 것처럼 이번 작은 창극은 전통의 방식을 현재화하는 고민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떳떳한 우리 어법의 창극을 선보였다. 물론 이 방식 하나만이 유일한 창극론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될 것이나, 창극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국민 모두가 항상 즐길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창극운동의 가능성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증명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