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일 퇴근 시간이 거의 됐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인 줄 알았는데,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반갑게도 우리 딸 '놀아줘 대마왕' 세린이입니다.
'이 녀석~ 또 뭐하고 놀자고 그러나?' 싶어 전화한 용건을 물으니 헤헤거리며 일찍 집에 오라고만 합니다. 녀석하고 통화하고 아내한테 물으니 역시 그냥 웃으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만 하더군요.
무슨 일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녀석, 무슨 말을 저리도 하고 싶었는지 아예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내 손을 끌고는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입니다.
끈적끈적한 이게 뭐니, 놀아줘 대마왕?
집에 들어서자마자 후다닥 뛰어가더니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서는 뒤로 감춥니다.
"아빠 눈 감아봐."
"왜? 뭔데 그래?"
"아이~ 빨리 감아봐."
녀석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제 손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는데, 약간 끈적거리는 것이 요리조리 돌려가며 만져보아도 선뜻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뭐야?"
"맞춰 봐! 힌트 줄까? 한가위 때 먹는 거야."
저는 그것이 송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단박에 답을 말하면 왠지 이 녀석이 실망하거나 재미없어 할까봐 일부로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녀석은 "아빠는 그것도 몰라? 그럼 이제 눈 뜨고 봐봐" 합니다.
아빠는 노란색, 엄마는 분홍색 드세요~
눈을 떠 보니 역시 송편이었습니다. 세린이라는 이름과 '송편처럼 예쁘고 알찬 추석 보내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는 작은 노란 상자 안에는 색깔도 고운 분홍색과 노란색 송편이 들어 있었습니다. 솔잎도 밑에 깔아 놓았더군요.
"와! 송편이네. 유치원 선생님이 줬어?"
"아니! 이거 내가 만든 거다. 선생님하고 친구들하고 엄마 아빠 주려고 만든 거야!"
"어유~ 그랬어? 이거 그럼 우리 세린이가 만든 거야? 정말 예쁘게 잘 만들었네."
"아빠, 먹어봐. 맛있어. 어떤 색 먹을 거야? 음~ 아빠는 노란색 먹고 엄마는 분홍색 먹어."
저는 녀석이 만든 송편을 한참 쳐다봤습니다. 기특한 녀석, 벌써 이렇게 커서 추석에 엄마 아빠 송편도 만들어오고. 아이들 보면서 느끼는 행복을 또 한번 크게 마음에 담습니다.
녀석은 자꾸 먹으라고 했지만, 왠지 녀석의 정성이 담긴 것을 단숨에 꿀꺽 먹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냉동실에 넣어 두었습니다. 당분간은 녀석의 이 송편을 보면서 행복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자식 키우는 행복이 이런 데 있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4일에도 출근하기 때문에 4일 저녁에 시골에 갑니다. 녀석을 데리고 방앗간도 가고 산에 올라가 솔잎도 따서 어머니랑 같이 송편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송편처럼 예쁘고 알찬 추석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