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에서 만난 농협 여직원도 한우, 칠보면에 도착해 길을 안내하던 소방서 직원도 한우,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도 한우, 모두 다 자기 동네 한우 자랑이 늘어졌습니다.
그러던 사이 칠보면 소재지를 지나 섬진강 양수발전소를 오른쪽으로 끼고 약 2km 쯤 더 가니 산외면 소재지가 나타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태까지 보아오던 한가한 시골은 어디가고 온 동네가 사람의 물결, 차량의 물결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과연 여기가 우리나라 농촌이 맞는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집 걸러 한 집 정도가 아니고 아예 동네 전체가 한우고기 판매장이라 할 정도로 정육점이 빼곡히 밀집해 있습니다. 인근에서는 물론 전주, 대전, 광주 등지에서 차 한 대에 사람은 너댓명 씩, 고기는 최소한 10근, 어지간하면 50근, 70근씩을 사서 트렁크에 싣고 갑니다.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이웃사촌의 주문서를 함께 모아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집이 이 한우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을 볼 수가 있는데 작게 기다린 사람이 1시간, 많게는 2-3시간을 기다려야 차례가 옵니다.
'고기만 사서 들고오세요'.
이런 간판도 여기 저기 눈에 띕니다. '1근에 6000원'. 이 말은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오면 육회를 하거나 구워 먹는 등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대여해 주는 비용입니다. 마치 저 멀리 부산 광안리나 속초항구의 횟집처럼요.
고기를 썰어주는 아저씨는 눈코 뜰새가 없습니다. 아침 식사 후 소변 한 번 못봤다고 투덜거리지만 손님 맞는 재미가 쏠쏠한지 금새 입이 벌어집니다. 전자저울의 눈금이 '1235g'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에이, 바쁘니 2만 원만 주십쇼."
잔돈을 챙기거나 1200g 이후의 35g을 따로 떼어낼 시간이 없다는 뜻이지요. 뒤쪽에서 막 썰어 놓은 큼직한 횟감을 두 손으로 날름 집어먹는 단골인 듯한 아줌마, 소주 한 잔에 벌써 취해 버린 동네 노인네.
현재 이 곳은 행정구역상으로 전북 정읍시 산외면. 인구가 채 3000명도 되지않는 아주 작은 시골입니다. 그런데 면사무소 앞에서 약 400m 정도 양옆 도로에 고기파는 점포가 26개가 성업 중이며 10개가 더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루 평균 20여 마리의 어미소가 도축되는데, 평일에는 2천명 주말에는 약 3천명 정도의 외지인이 한우를 사기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 마을이 이처럼 성공하게 된 이유는 산지직거래를 통해 중간 마진을 없애고 생육 기간이 짧은 숫소를 선택하여 생산 가격을 낮추었으며 소비자에게 100% 한우라는 신뢰감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식당과 정육점이 서로 공조하는 시스템 즉, 고기값 따로 받고 구워 먹는 값 따로 받는 전략이 성공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 가는 우리의 농촌에 희망의 등불을 본 듯하여 올해 한가위 보름달은 아마도 둥실 둥실 환하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찾아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태인IC - 태인 - 칠보 - 산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