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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이 유력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제연합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반 장관의 사무총장 선출을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한 국가라도 반대한다면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강대국은 한국 외무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지지하는가? 19세기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세력관계를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 그들에게는 체스판에 불과

1895년 청일전쟁. 메이지 유신이후 급속히 근대국가체제를 수립한 일본은 중국을 패퇴시켜 한반도에 대한 세력 확장에 나선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이러한 일본의 세력 확장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청일전쟁 직후 삼국간섭과 아관파천을 통해 중국과 한국에서 일본의 세력 확장을 견제한다. 불행히도 이 와중에 러시아와 연계해 일본을 견제하려던 조선지도부(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해 제거된다.

일본은 러시아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자 러시아의 전통적 라이벌인 영국을 끌어들여(영일동맹 1902) 대러 전쟁을 감행한다. 결과는 일본의 예상외 승리였다. 이후 일본은 미국과의 합의(가쯔라-태프트 밀약 1905)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는다. 영국과 미국에게 일본의 한반도 점유는 러시아의 동아시아 세력 확장을 견제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관계에 영원한 우방은 역시 없었다. 영미 양국과 일본의 밀착관계가 현실적인 국가이익에 기초했다면 그들 간의 불화 역시 현실적인 국가이익으로부터 발생하였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를 넘어 중국까지도 세력을 확장하려 하였다.

당시 중국에서 상당한 기득권을 확보했던 영미 양국은 이러한 일본의 세력 확장 시도를 용인할 수 없었다. 특히, 1차 대전 이후 패권국가로 부상한 미국은 더더욱 그랬다. 1921년 워싱턴회의가 대일견제의 첫무대였다. 여기서 미국은 영일동맹을 폐기시키고, 일본의 해군력을 제한했던 것이다.

당연히 일본은 미국의 견제에 불만이었으나, 미국을 상대하기에는 분명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안으로 군비확장을 추진해 향후 필연적인 대미일전을 대비한다. 마침, 대외 팽창적 성향의 군부세력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결국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일 간 일전은 개시되고 일본은 패퇴한다.

한반도에서 일본이 물러간 후 생긴 세력공백은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 채워진다. 미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최초로 확대했다면, 러시아 세력은 러일전쟁 패배 후 근 40여년 만에 재등장하였다.

미소 양국은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으나 한반도에서 자국의 세력 확대를 꾀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똑같았다. 결국 미소 양국은 38선을 긋고 남북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세력을 내세운다. 이 과정에서 토착 민족주의 세력은 제거되었다. 남쪽에서는 김구가 북쪽에선 조만식이. 어느 국제정치이론가가 그랬던가. 20세기 강대국간 세력균형 정치의 가장 큰 희생양이 한국이라고.

이런 구도가 수십 년간 지속되었고 탈냉전이라는 이름하에 미소 양극체제는 붕괴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은 감퇴되었고 미국의 세력은 건재하였다. 한편, 개혁개방 이래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공백을 빠르게 채우고 있다. 북핵 6자 회담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미중 양국의 입장 차이는 2006년 현재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이루는 두 축이 중국과 미국임을 시사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반기문

휴전선을 남북으로 각각 2킬로미터 안에 비무장지대가 있다. 남북간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논리를 확장하면, 한반도 전체는 주변강대국들에게는 일종의 ‘거대한 비무장지대’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거대한 비무장지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기문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한반도 비핵화 논리와 맞닿아 있다. 강대국간 이해관계의 절묘한 합의점. 어느 한 국가가 단독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반도를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그 비무장지대 출신으로 하여금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시키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 전략일 것이다.

즉, ‘반기문’은 냉혹한 강대국 정치의 단순한 인격화일수도 있는 것이다.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한국인으로서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 그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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