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다
윤 재 훈
저마다의 모습으로
입을 쩍쩍,
벌리고 있는 밤송이들
그 모양을 가을산에서 보니
더욱 슬프다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는 듯
바닥까지 드러낸 밤송이는
한시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쏟아내고 있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둘러쓰고
삐두름이 입을 반쯤,
벌린 밤송이는
뭔가 잔뜩, 못마땅한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아예 땅을 향해 엎드린 밤송이를
발로 툭, 건드리자
온 몸을 뒤집으며
알밤 3개를 꽉, 보듬고 있다
가을산,
갈옷으로 갈아입은 산
우듬지로부터 한 잎 두 잎
낙엽은 떨어지는데
삭정이 하나 문득,
내 발길을 막는다
어디로 갈 거냐고
이 가을날,
너는 어디로 갈 거냐고
나무들도 하나 둘,
세상에서의 인연을 털어내는데
너는 옷 속에 가득,
무엇으로 채우고 있냐고.
돌아보니,
가을산에 얹힌
낮달만이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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