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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언니와 나를 보며 한 편으론 기분이 좋으면서도 또 한 편으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다.
"가시나가 책 좋아하마 게을러서 살림 몬 산다."
엄마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 자매는 걸레질하고 방 치우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책을 좋아해서 그런 걸까 나는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책 보는 게 더 재미있고 책 보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재미있다. 그래서 내 하루의 많은 시간이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것에 바쳐진다.
칠팔 년 전부터 나는 글을 썼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내 일상들을 썼다. 시골로 이사 오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글이 술술 나왔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북돋움이 없었다면 나는 글쓰기에 대한 매력을 그리 오래까지 가지지 못했을 것도 같다.
남편은 내 글을 아주 좋아했다. 내가 쓰는 글의 맨 처음 독자이기도 했던 남편은 항상 나를 북돋워 주었고 용기를 심어 주었다. 그 다음으로 내 글을 좋아했던 사람은 그 당시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내 외사촌 오라비였다. 우리 둘은 사촌 간이기도 했지만 중학교 동창생이라서 친구이기도 했다.
내 외사촌은 늘 나더러 그랬다.
“나중에 같이 중국을 두루두루 여행하고 책 한 권 내자. 너의 감성과 나의 중국 지식이 합쳐지면 아주 멋진 작품이 나올 거야.”
비록 꿈일지라도 그 생각을 하면 늘 기분이 좋았다. 중국통인 내 외사촌이 안내하는 여행이라면 보통의 관광여행과는 다를 것 같았고 또 그것이 나와 잘 맞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내 글쓰기는 든든한 후원자들 덕분에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나아갔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냥 나 혼자만의 글이었지 남에게 보여줄 만한 글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고 전문가들만이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작가 성석제씨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의 책을 한 권 사서 봤는데 글이 너무 쉬웠고 읽기에 편했다. '아, 글이란 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니네. 사소한 이런 거도 다 글감이 되네'란 생각이 들었다. 성석제씨가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가지고 쓴 글들을 보면서 나도 내 주변 이야기들을 이렇게 쓸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석제씨의 글을 낮게 평가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성석제씨를 높게 평가한다.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은 그렇다고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아는 것을 남이 알기 쉽도록 전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진짜 아는 거란 말도 있다. 그렇듯이 성석제씨처럼 쉽게 다가오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성석제씨의 소설과 잡문들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전작주의자의 꿈>이란 책을 쓴 조희봉씨는 이윤기 선생의 글을 좋아해서 선생의 모든 글들을 다 읽었다고 한다. 전작주의란 어느 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 작가가 쓴 모든 글들, 일테면 잡문까지 모두 다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전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석제씨의 작품은 되도록 다 구입해서 본다. 어떤 책은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고 아무 때고 불쑥불쑥 빼서 보곤 한다.
'그래, 글이란 게 이런 거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게 글이야. 술술 읽히고 그냥 스며드는 게 좋은 글이야. 일부러 어렵게 비틀지 않고 누구나 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야.'
올 봄 <오마이뉴스>를 만나면서 내 글쓰기는 또 한번 도약했다.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전의 내 글쓰기가 혼자 하는 말이라면 지금의 내 글쓰기는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와 비슷하다.
모든 시민을 저널리스트로 만든 <오마이뉴스> 덕분에 나도 목표를 가진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남편은 지금 내가 쓰는 글쓰기 방식보다는 과거의 내 글쓰기 방식을 더 좋아한다. 예전 글들에서는 나만의 색깔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오마이뉴스>가 바라는 글을 나도 모르게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오마이뉴스>는 수필성 글보다는 시사성과 현장성이 가미된 글을 더 선호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도 은연중에 그 쪽으로 나아가게 된 것 같다.
나는 애써 쓴 내 글이 '잉걸'로 남아도 별로 마음 상해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내 글이 <오마이뉴스>와 잘 맞지 않아서 잉걸로 남았겠지 생각하고 편하게 넘겨 버린다. 그냥 사라지는 글도 많은데 그래도 <오마이뉴스> 덕분에 글이 남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돌이켜보니 나는 뭔가에 매료되면 폭 빨려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3~4년 정도의 주기를 두고 어떤 것에 매료되었다가 싫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나와 함께 평생을 갈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