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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지인들을 만났다. 명절마다 모이면 사고치는 친척 한둘은 꼭 있는 것처럼 올해는 북한이 '핵실험 선언'이라는 사고를 쳤다. 하여 화제꺼리는 자연스럽게 정치로 흘러갔고 사람마다 의견도 이유도 달랐다. 그리고 내년은 대선의 해다.

퍽 오른 부동산 세금 때문에 현재 여당에 분개하는 이도 있었고, 북한이 저 난리인데 이대로 야당이 집권하면 정말 전쟁 날거라며 비분강개하며 욕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묻기에, 아직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은 없다고 말했다. 조금 차분하게 아직은 지지하는 정치인이 없고, 다만 개인적인 정치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게 뭔데'라고 그들이 물었다.

요즘 한달에 5만원씩 정치 비자금을 모으고 있다. 이왕 비자금을 마련할 거라면 이자가 고정된  은행의 적금은 모으는 재미가 적을 터다. 그래서 인덱스 펀드에 가입했다. 주가가 출렁이지만, 4달동안 모아진 원금 20만원에 이자는 14,749원. 투자 수익률은 7.37% 다. 자평컨데 현재까지는 성과가 있는 편이다.


주식형 펀드니 최악의 경우 원금에도 영향을 미칠 위험은 있지만, 인덱스 펀드라서 주식시장이 폭락만 하지 않으면, 또 설령 폭락했다해도 환매시점만 적절히 선택하면 최하 원금 60만원 정도는 모아질 듯 하다. 이 이야기를 하자 왜 이런 돈을 모으고 있느냐고 지인들이 물었다. 그야 물론 정치자금이 필요해서다.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였을 때, 정치자금은 정치인이 뒤 구린 기업들을 협박해서 조성해서 국민들에게 사용했다. 어떤 의미에서 권위주의 밀실정치는 나름의 경제적 분배(?)를 실현했다. 큰 선거를 앞둔 전해 추석같은 명절에는 이렇게 뿌려지는 돈으로 경기가 확 살아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이루기 위해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이제 정치인의 책임이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시민의 책임이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필요한 돈은 당연히 만들어 두어야 하지 않은가?

내년은 대선의 해다. 오픈 프라이머리까지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어떤 정당이 어떤 후보를 상품으로 내세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수중에 마음대로 쓸수 있는 60만원의 정치상품 구매용 비자금을 지닌 '나'와 돈 한푼 없이 그냥 찍기만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 대한민국의 많고 많은 문제 중에 정치문제가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한국사람들이 정치에 투사하는 열정이나 관심은 자신들이 지닌 개인적인 문제가 자신의 깜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라는 거대한 영역으로 끌어올려 해결하기를 원라는 심리가 크다.

교육문제가 그렇고, 세금과 부동산 문제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경향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자기 주변의 문제들도 잘못된 것은 정치가 잘못된 것이며 결국 이는 모두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정치가 잘못된 것은 정치인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치인 만큼의 책임이 주권자인 시민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정치의식이 하류인데, 정치인의 정치의식이 일류가 될수는 없다.

더구나 정치의 문제가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 또는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다른 국민들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다. 보수적인 국민은 진보정치인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원흉이라고 하고, 진보적인 국민은 보수정치인이 대한민국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고 단죄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에게 넌 왜 보수주의자라고 매도하는 것이나, 진보주의자에게 넌 어째서 진보주의자라고 항의하는 것 처럼 우스꽝스러운 시간 낭비는 없다. 사람들의 정치적 프레임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다만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합리화할뿐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노무현을 욕하는 댓글을 단다고, 박근혜와 이명박을 욕하는 글을 올린다고 그들이 변할거라는 환상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시간에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인터넷의 정치 기사에 댓글 달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한달에 5만원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미리 계획하고 지불할 수 있는 생산적인 정치행위다.

물론 한달에 5만원 모으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댓가니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모을 수 있다.  내 경우엔 담배를 피지 않고, 술자리도 한달에 한두번 정도를 줄이니 충분히 가능했다. 모으기 시작한지 넉달이나 지나서야 이 글감을 챙겨쓰는 것은 모아보니 앞으로도 꾸준히 모을 자신이 생겨서다.  이 글은 그래서 진행형이고 연재글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대선 결과를 나 같은 소시민은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설령 내가 원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그 모든 결과를 이 공동체의 한 구성원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러니 만약 시민이 정치인에게서 돈을 받아서 정치에 참여한다면 시민은 정치인의 종이 되는 것이다. 시민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치자금을 미리 모으고, 때가 되면 그 돈을 최대한 잘쓰는 것. 그래서 설령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치체제가 들어서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스스로 수긍하고 납득하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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