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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씨는 독신입니다. 그런데 여태껏 혼자 지내던 정은씨에게 작년에 다 자란(?) 아이가 생겼습니다. 조카와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조카 민수(가명·8·남)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어떻게 조카와 같이 지내게 되셨어요?"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작년부터 여동생이 혼자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평소 살림만 하던 애라 당장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돼서 제가 맡게 되었죠."
조카를 맡아 돌보고 있는 정은씨의 마음씨가 참 따뜻하다고 생각되어 "좋은 일 하시는군요"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은씨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좋은 일은요, 저도 혼자인지라 서로 의지하며 살아요."
처음 동생이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을 때는 동생과 같이 지냈다고 합니다. 이제껏 살림만 하던 동생은 당장 생활 능력이 없었고, 그래서 김정은씨는 동생에게 미용을 배워볼 것을 권했습니다. 동생도 처음에는 열심히 미용 기술을 익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미용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은 식당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카의 말 한마디가 저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정은씨가 조카 민수와 같이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조카 민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준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동생네 부부가 별거에 들어간 후 처음 몇 달간은 동생네가 정은씨 집에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직장을 얻게 되자 동생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언니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조카 민수가 떠나기 전날, 민수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나 외가에 안 가면 안 돼? 이모 다리 아픈데, 아무도 없으면 이모 아플 때 누가 병원에 전화해 줘?"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정은씨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죠. 동생에게 조카의 말을 전해들은 정은씨는 조카를 데리고 있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민수의 말이 정은씨의 마음에 찡하니 와 닿았던 것이죠.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던 정은씨는 조카 민수와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니고 이모라서 더 신경 쓰입니다
"민수 키우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친자식도 키우다 보면 힘들고 속상하는 때가 많은데…." 말끝을 흐리면서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조카를 돌보기가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은씨는 조금 엉뚱한(?) 대답을 들려 줍니다.
"이모가 키우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쓰입니다. 혹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지 더 많이 걱정됩니다. 아이가 환경 때문인지 너무 눈치가 빠르고 어른스러워요. 청소며 집안일 돕기며 심부름이며 알아서 척척 잘합니다. 어쩔 때는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민수는 '약다' 싶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고 합니다. 이모가 몸이 좀 아픈 것 같으면 "이모, 제가 설거지할까요?"하며 이모를 돕겠다고 나선답니다. 그런 민수를 보며 아이가 너무 약아지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한답니다.
"제가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없어서 혹시나 아이에게 너무 완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늘 조심합니다. 하지만 '일기 쓰기'는 반드시 시키고 있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은 매를 드는 날입니다. 일기는 매일 매일 쓰게 합니다. 요즘은 공부도 조금씩 시키고 있습니다."
민수가 잘 자라서 자기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수랑 같이 지내면서 좋았던 일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이모와 조카가 같이 지내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서 제가 물었습니다.
"민수 덕분에 오빠와 화해를 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도 정은씨는 다소 의외의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정은씨는 요 몇 년간 친정 오빠와 사이가 좋지 않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먼저 전화를 해서 집으로 초대를 하더랍니다. 오빠의 전화를 받은 정은씨가 지나가는 말로 민수에게 물었답니다.
"민수야, 외삼촌이 이모보고 놀러 오라는데 갈까? 말까?"
그랬더니 민수가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외삼촌이 전화를 하셨으면 당연히 가셔야죠."
너무나 어른스러운 민수의 말에 정은씨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결국 정은씨는 민수의 말을 받아들여 오빠의 초대에 응했고 그때 오빠와 화해해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씨의 말이 이어집니다.
"애가 이래요.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지, 약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더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도 정은씨는 민수를 잘 키워야겠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민수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민수를 잘 키워야겠다는 정은씨의 말끝에 제가 물었습니다.
"우선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수는 나중에 소방관이나 경찰 아저씨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 꿈을 꼭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계속 손님이 들어와서 저는 그만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미용실을 나오면서 정은씨와 민수가 오래도록 서로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수가 잘 자라서 자기의 꿈을 꼭 이루기를 빌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