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0월 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공개적으로 핵실험 강행 의지를 천명한 이후 한반도 정세가 극도의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함께 살 수 없다"며 초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고, <조선신보> 등 북한 소식통은 "빈말이 아니다"며 북한 내의 강경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국내외 언론들은 이르면 이번주, 늦어도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되는 11월 7일경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쯤되면 북한의 핵실험은 '여부'가 아니라 '시점'이 문제인 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할지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위협을 '협상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초강경 입장에 기존의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고, 북한 역시 많은 '학습효과'를 통해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의사를 '외교적 카드'로 해석하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 및 '전쟁불사론'까지 감수하면서 본격적으로 '핵 억제력'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된다. 핵무기가 억제력으로서의 효용을 갖기 위해서는 이를 탄두화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핵무기를 소형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핵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북한은 8000여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2003년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5MWe 원자로에서도 폐연료봉을 추출해 재처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북한이 플루토늄 보유량을 늘려감으로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여유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 따라 건설 중단한 50MWe 원자로 공사를 재개해 이를 가동하면 매년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 이 원자로 공사에 박차를 가한다면 그 완공시기는 2008년경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핵전문가인 신 딩리 푸단대 교수가 노틸러스 기고문을 통해 분석한 것처럼, 북한으로서는 핵무기 보유에 따른 여러 가지 '장점'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결정적인 한방을 가짐으로써 '고슴도치 전략'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중국이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강성대국'의 이미지를 인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어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대비한 정신무장을 강화할 수 있고, '핵 억제력'을 가짐으로써 과도한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외교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궁지에 몰렸다고 해서 이성까지 잃으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최소억제이론'이 북한에 통할 수 없는 이유
먼저 북한은 몇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대미 억제력을 확보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억제력은 "적으로 하여금 무력사용이나 전쟁을 개시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효과"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적에게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공격이나 전쟁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무력 사용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킴으로써 확보된다.
이러한 억제력이 통하기 위해서는 적이 군사 행동을 할 경우 확실한 피해(assured damage)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하며, 아울러 그러한 보복 위협이 신뢰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2차 공격(second strike)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이러한 능력을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미국의 선제공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여분의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데, 2008년 이전에 북한이 확보할 수 있는 핵무기 수는 10개를 넘기기가 어렵다.
핵무기 보유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50MWe 원자로의 경우 2008년에 완공하더라도 이를 가동해 폐연료봉을 추출하고 이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시점은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또 최소한의 핵무기 보유로 억제력 확보를 시도해온 중국과는 달리 북한은 영토가 좁아 핵무기를 분산 배치하기도 쉽지 않다. 핵미사일을 은폐하기 위해 지하시설에 보관하면 유사시 신속하게 사용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밀타격 능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사일방어(MD)를 배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재편에 들어간 미국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시설 및 저장고를 최우선적인 파괴 대상으로 삼고 이를 위한 정밀타격 및 정보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개의 핵무기를 갖더라도...
북한이 10기의 핵미사일을 보유한다고 가정할 때, '핵 억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생존율'과 MD에 의한 '피요격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확히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공격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사일 요격 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될 것이고 이는 북한 핵미사일의 생존율은 떨어지는 반면에 피요격율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미국 주도의 대북 공격에 의한 북한의 핵미사일 파괴율을 50%로, 미사일 요격율을 20%로 가정하면, 이론적으로 볼 때 미국은 25기의 요격 미사일을 배치하면 북한의 핵미사일을 무력화할 수 있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를 '최후의 보루'(last resort)에서 '사용가능한 무기'(usable weapon)로 인식하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핵무기 사용도 가능하다는 핵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보력과 정밀타격능력, 그리고 MD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서 북한을 상대로 완벽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지 못할 수 있다. 수천개의 지하시설을 갖고 있고 국토의 80% 가량이 산악지형인 북한을 상대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1, 2차 걸프전 및 시험 평가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MD의 성능 역시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 군사력의 한계는 다른 방안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 정보력의 한계를 여러 목표물을 상대로 한 '동시 폭격'으로 만회할 수 있고, 북한 지도부를 제거해 핵무기 사용 정책결정 과정을 마비시키는 것을 무력 사용의 최우선적인 목표로 상정할 수도 있다. 또 핵무기 저장고와 지도부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지역을 방사능 오염 지대로 만들어 군사 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이 미국에게 보복의 두려움을 주지시킴으로써 군사 행동에 근본적인 제약을 가하는 '신뢰할만한 억제력'(credible deterrence)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파멸로 이끌 군비경쟁의 늪
점차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맥락에서 볼 때에도 핵무장은 북한에게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이미 '북한위협론'을 명분으로 군비증강 및 동맹체제 강화에 나서고 있는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는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경우 그 속도를 훨씬 높일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MD와 지하요새 파괴용 소형 핵탄두 등 신형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증강과 선제공격을 구체화하는 작전계획 수립 등이 포함될 것이다.
특히 적대 국가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미-일 삼각체제는 북한의 핵무기고(庫)와 지도부를 최우선적인 제거 대상으로 삼을 것이고, 이에 불안을 느낀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 군비증강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핵무기 보유는 핵무장 자체가 갖고 있는 안보 딜레마의 속성과 북한의 경제력 및 기술력, 그리고 한-미-일의 군사력을 종합해볼 때 불가능하다.
북한이 이러한 군비경쟁의 늪에 빠지면 그 결과는 자명해진다. 미국에 의해서든 북한에 의해서든 한반도는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북한은 첨예한 군비경쟁의 여파로 체제 붕괴의 위험성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북한은 또한 '핵 억제력'을 갖게 되면, 재래식 군사력을 줄여 경제회생에 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실제로 북한은 핵 억제력을 갖게 되면 '상용 무력'(재래식 군사력)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거나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볼 때 이 역시 현실화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5대 핵보유국은 핵 강대국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또 다른 핵보유국들 역시 핵무기 보유 이후 재래식 군비 부담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키스탄이 아니라 소련의 몰락에서 교훈 찾아야
일부에서는 북한이 파키스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북한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1998년 핵실험을 강행한 파키스탄은 한 때 미국 주도의 제재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우방국이 되었고 핵보유는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인도를 상대로 한 억제력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핵무기 보유 동기가 대미 억제력 확보인 북한과는 그 상대가 다른 것이다.
또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21세기 전쟁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가운데 하나이다. 부시 행정부가 반미 테러집단을 제거하고 중동을 친미·친이스라엘 질서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수만개의 핵무기를 갖고서도 몰락한 소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소련의 붕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에도 '소련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을 자극해 군비경쟁에 나서게 하는 한편, 경제제재와 봉쇄의 수위를 높여 북한의 내폭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바로 이러한 덫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결국 핵실험은 북한의 '군사적 억제력' 확보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미국 주도의 '비군사적 위협'에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간곡히 호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