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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오전 실시한 핵실험 외에 인근에서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나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대체 어떤 종류의 핵무기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그간 북핵 문제의 경과와 현재 나타나는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최소 6~8개의 핵무기를 제조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많게는 12~14개의 핵무기를 만들었거나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무기는 폭발원리에 따라 핵분열에 의한 것과 핵융합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핵분열에 의한 것은 흔히 원자폭탄, 핵융합에 의한 것을 수소폭탄이라 부른다. 수소폭탄의 파괴력은 보통 원자폭탄의 50배에 이른다. 원자폭탄 한발로도 소도시 하나를 궤멸시킬 수 있다고 보면, 수소폭탄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자폭탄은 다시 제조방법에 따라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으로 분류된다. 북한이 9일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이는 핵무기는 플루토늄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중 북한이 우라늄탄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번 핵실험의 대상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우라늄탄은 별도의 고폭장치가 필요없기 때문에 보통 실험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북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부인

▲ 사진은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플루토늄탄은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난 핵연료봉을 재처리해서 추출하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만든다. 보통 사용 후 연료봉에 플루토늄탄의 원료가 되는 'Pu239'는 1% 정도만이 존재하는데, 이를 90%로 농축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화학공정이 따른다.

이에 비해 우라늄탄은 자연 상태의 우라늄에 약 0.75% 함유돼있는 'U235'를 90% 이상으로 농축해서 만든다. 농축과정에는 '원심분리법'이 많이 사용되는데 수천개의 원심분리기를 1년 내내 돌려야 겨우 폭탄 1개 정도 제조가 가능하다.

그러나 소규모로 분산 은닉이 가능하고, 방사능 누출 위험이 없으며, 전력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는 나라들이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과거 리비아가 이 방식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결국 포기했고, 지금은 이란과 북한이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은 2002년 10월 당시 제임스 켈리 미 국무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돌연 부상했다. 켈리 차관보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회담에서 HEU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미합의와 남북한 비핵화공동선언 위반"이라고 따졌다.

다음날 회담장에 나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갖게 했다"며 대결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 차관보는 귀국하고 나서 이를 근거로 북한이 HEU 계획을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 후 '근거 없는 얘기'라며 부정하는 자세로 돌아섰고, 6자 회담에서도 일관되게 HEU 계획을 부정하고 있다.

[1차 북핵위기] IAEA 사찰 거부... 사찰해보니 플루토늄 양 달라

본래 '북한 핵 의혹'은 플루토늄에서 출발했다. 북한이 처음으로 손에 넣은 플루토늄은 93년 이른바 '제1차 북핵위기' 이전 평안북도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 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서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변 실험용 원자로는 소련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은 5000㎾급 흑연 감속로이다.

북한은 1985년 당시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NPT 체약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협정을 체결하고 사찰을 받을 의무가 있으나. 북한은 이를 계속 거부했다.

1989년에는 흑연감속로를 70일간 정지시킨 일이 있었다. 이 사이에 핵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했다는 의혹이 부상했다.

92년에 겨우 안전협정을 체결하고 사찰을 받아들였으나 북한이 추출했다고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과 사찰결과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1차 북핵위기'의 시작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93년 2월 의회 보고에서 "북한이 IAEA 몰래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제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것이 북한이 처음으로 확보한 핵무기 재료이다.

'북폭위기'까지 간 핵연료봉 추출... '제네바합의' 했으나

IAEA는 93년 2월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과 사찰결과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사찰 실시를 결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그 해 3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어 94년 5월부터 영변 흑연감속로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꺼내기 시작했고, 6월에는 IAEA 탈퇴를 위협했다.

이렇게 북핵 위기가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중폭격 검토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남쪽에서는 사재기 바람이 불고,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북한 방문이 이뤄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카터 대통령에게 IAEA 사찰관의 체류를 받아들이고, 남북 정상회담에도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세는 급속히 대화국면으로 이행, 그 해 10월 북·미간 제네바합의가 체결됐다.

이 합의에 따라 북한이 흑연감속로에서 추출한 사용후 핵연료봉은 알루미늄 용기에 밀봉해 영변의 수조 저장시설에 보관했다.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과거 추출했을지도 모를 플루토늄의 처리는 일단 뒤로 미룬 채 현재와 미래의 북한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키는 합의였다. 이 합의는 미국의 정권교체 등 내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위태롭게 생명력을 이어가다가 2002년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결렬 국면을 맞는다.

[2차 북핵위기] 깨어진 합의... "핵연료봉 8천개 재처리"

▲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 2003 몬테레리 연구소
북한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중유공급을 중단한 것에 반발, 2002년 12월 IAEA 사찰관을 영변에서 추방했다.

다음해 1월에는 영변 저장시설에 밀봉 상태로 보관하고 있던 사용 후 핵연료봉을 꺼내 트럭에 싣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모습이 미 정찰위성에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은 2003년 7월 뉴욕 채널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봉 8천개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그 전후 북한 주변의 대기에서 플루토늄 추출시 발생하는 방사성가스 클린톤85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해 10월에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연료봉 8천개의 재처리를 선언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역시 제네바합의로 정지시켰던 영변 흑연감속로를 2003년 초부터 재가동시키기 시작했는데, 2005년 4월 이 시설의 가동이 일시 정지된 것이 미 정보당국에 의해 확인됐다.

그 해 11월 북한은 "8천개의 사용 후 핵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최대 12~14개 분량... 핵무기 전력화하려면 추가 핵실험 필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용 후 핵연료봉 8천개 분량이면 17~33kg의 플루토늄을 제조할 수 있다. 핵무기 1개를 만드는데 필요한 플루토늄의 양은 일반적으로 5kg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북한이 2003년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 측에 밝힌 8천개의 핵연료봉으로 만든 플루토늄의 양과 제네바합의 이전에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핵무기 1~2개를 합치면 6~8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2005년 4월 일시 정지시킨 흑연감속로에서 꺼낸 사용 후 연료봉도 재처리를 완료했다면 추가로 3~6개의 핵무기를 만들었거나,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라늄탄의 존재 여부는 별도로 검증될 사안이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는데 추가 핵실험 여부는 하나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를 '전력화'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핵실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도·파키스탄 등 앞서 핵실험을 감행한 나라들이 다 그랬다. '한 방'으로 그치는 것은 정치적 상징효과만을 노린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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