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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지하 핵실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지하 핵실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북한의 핵실험 직후,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대북포용정책 포기를 시사했다.

이 소식을 듣고 필자는 크게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는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이 무슨 죄인가'라는 안타까움이고, 둘째는 '노무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제대로 하기나 했나'이며, 셋째는 '한반도 운명이 우리 손을 떠나는구나'라는 탄식이다.

우선 북한의 핵실험이 규탄받아 마땅한 행위임은 틀림없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대북강경책에 대한 모험주의적 선택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북한을 제외하곤 북핵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북강경책에 있는데, 북한 핵실험을 근거로 대북포용정책은 폐기되고 대북강경책이 강화된다면, 이는 진단과 처방이 뒤바뀐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핵 문제가 재발한 시기가 김대중 정부 말기 때인 2002년 10월이고, 대북포용정책 계승을 자임한 노무현 정부 시기에 북핵 문제가 계속 악화되어왔기 때문에, 포용정책이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포용정책의 전제와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의 온전한 실현이라는 점에서 포용정책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제네바 합의 붕괴

부시 미 대통령.
부시 미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그러나 여기서 따져봐야 할 문제는 많다. 우선 북핵 문제 재발의 직접적 요인이 되었던 '고농축 우라늄 문제'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으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외면하고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는 사이에, 북한의 핵 능력 강화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동결된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져 왔다.

즉 북핵 문제의 '시발'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충돌에서 비롯되었으나, 실질적인 '악화'는 제네바 합의 체제의 붕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네바 합의의 붕괴 책임은 전적으로 부시 행정부에 있다.

부시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미사일방어체제(MD)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했고, 9·11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이들 국가를 상대로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부시 독트린'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독트린을 보여주듯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해 북한이 핵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성격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과 이에 대한 북한의 모험주의적 선택에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이는 대북포용정책이 북미간의 대결을 완화·해소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문제의 근원을 포용정책으로 환원하는 시각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는 포용정책의 진정한 계승자인가?

또 한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제대로 펼쳤느냐'는 것이다. 지난 3년 반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노 정부가 포용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정부의 정치적 수사와 보수파의 정치적 공세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 그리고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사업을 지속해왔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이전까지 인도적 지원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 정부는 포용정책의 가장 중요한 '철학과 원칙'을 저버렸다.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별법을 수용함으로써 남북관계 채널과 포용정책 주역들을 퇴출시켰고, 남북한 신뢰에 치명타를 가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은 남한의 의도에 대한 북한이 의구심을 갖게 했고, 2003년 5월 노 대통령 첫 방미 때 보여준 '친미반북' 행보 역시 북한의 불신을 자극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전까지 '선(先) 북핵 해결, 후(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정부의 북핵 해결 원칙을 스스로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만들고 말았다.

또한 노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력증강과 재배치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과 PSI 부분 참여 등을 수용하는 한편, '독자적인 대북억제력 확보'를 명분으로 대규모의 전력증강을 추진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조성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많은 안보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한미동맹이 막강한 군사력을 추구할수록 북한이 핵무기 등 이른바 '비대칭 전력'을 추구할 동기는 강해지는 속성이 있다.

가장 치명적인 선택은 '쌀과 비료 지원 중단'

2004년, 북한 평안북도 룡천에 보낼 대한 적십자사의 긴급 구호품을 실은 화물선이 인천항을 출항하는 모습.(자료사진)
2004년, 북한 평안북도 룡천에 보낼 대한 적십자사의 긴급 구호품을 실은 화물선이 인천항을 출항하는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가 사실상 포용정책을 포기한 시점은 올해 7월이다.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징후가 포착되자, 시험 발사를 강행하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고, 북한이 시험 발사를 강행하자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는 포용정책의 기조와 사실상의 결별의 의미했다.

포용정책의 근간은 강력한 방위태세 유지를 한편으로 하면서, 대화와 접촉을 통해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제재와 봉쇄로는 공산주의 국가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역사적 경험과 남북관계의 전개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얻은 교훈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노 정부는 대북지원, 그것도 인도적 지원 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음으로써 대북포용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저버렸다. 이는 노 정부 출범 이후 악화와 회복을 반복해왔던 남북한의 신뢰가 완전히 깨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모습은 1998년 8월 31일 북한의 광명성 1호(대포동 1호) 발사 때, 김대중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고 미국과 방위태세를 유지하면서도,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적 지원과 막 닻을 올린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속하는 한편,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와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일괄타결을 제안함으로써 미국 내의 대북 강경론을 협상론으로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만든 노무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북 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은 이뤄지면 좋겠으나 이미 늦은 듯하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남한의 쌀·비료 지원 중단으로 남북관계는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우선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꺼져가고 있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이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졌고, 북한 역시 "6자회담을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고 여러 차례 밝혔던 만큼,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 것은 극단적인 위기를 방지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관계를 잇는 마지막 보루하고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섣불리 중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이들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안팎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고, 정부도 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사업마저 중단하면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남한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이들 사업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까지는 어렵더라도 섣불리 중단하지 않겠다는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대담하고도 포괄적인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대단히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비록 맥락은 다르더라도 핵보유국이었던 남아공과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핵무기를 폐기한 사례들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큰 틀의 해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에게 북미직접대화 및 금융제재에 있어서 유연한 모습을 보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부시의 대북정책 비판론은 한국에게 원군이 될 수 있다.

정부를 포함해 한국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이 포용정책을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손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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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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