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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폭포
설악폭포 ⓒ 김선호
설악산을 오르지 않고서 산행을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단풍 물든 가을의 설악을 걸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산에 대해' 안다고 얘기 할 수 없으리. 설악산 대청봉, 1700미터가 넘는 해발고지에 다다르기 위해 두 해를 별러 왔다.

지난해 10월, 설악산을 오르기 위해 밤이 늦어 오색을 찾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지어 먹고 서둘러 남설악매표소에 도착해 보니 '입산금지'라 했다. 더 이른 시각부터 설악산을 오른 인파가 8천명을 넘었다고 했다.

이미 너무 많은 인파가 설악산으로 들어갔으니 더 이상은 안된다는 거였다. 설악산 대청봉을 뒤로하고 주전골을 걸으며 한편으론 허탈하고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미 설악산을 올랐거나 마음으로만 몇 번 설악산을 품어본 나 같은 이에게 설악산은 결코 만만치 않을 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청봉을 넘다
대청봉을 넘다 ⓒ 김선호
다행히 올해는 입산통제가 될 만큼 인파가 붐비지는 않았다. 설악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감상하기에 하루라는 시간은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닐 것이었기에 오색지구에서 오르는 길을 택했다. 설악산 대청봉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새벽 여섯시 반, 쌀쌀한 강원도의 아침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점퍼를 껴입고 오색지구 매표소에서 출발했다. 곧이어 기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설악을 향하여 오색으로 오르는 길 또한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산행길에 짧은 코스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타거나 에돌아가는 길이 있을 뿐. 가파른 오르막을 느슨하게 펼쳐놓으면 에돌아가는 그 길과 꼭 맞아떨어질 것이란 생각이 오색지구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들었다.

산 아래쪽은 아직 단풍이 일렀다. 중턱을 넘을 때부터 단풍빛이 조금씩 붉은 기운을 띠더니 어느 순간부터 단풍나무에 불이라도 붙은 듯한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설악의 청정한 공기 때문인지 유난히 붉은 단풍빛이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펼쳐지고 붉은 단풍나무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였을까.

'엄마, 왜 설악산이야? '라고 아이가 물었다. '하얀 바위산 '이라는 한자 뜻풀이를 설명해 주려는 순간 아이가 놀라며 다시 묻는다. '엄마, 설악산에 눈이왔어'라고.
아이는 설악폭포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 '雪岳'이 있었다. 마치 곱게 분이라도 바른 듯 하얀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 그 위로 흐르는 푸른 물줄기는 참으로 푸르렀다. 흰바위와 푸른 물줄기를 받쳐 주기라도 하듯 계곡가에 단풍나무는 더욱 붉었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은 가도 가도 오르막이었다. 게다가 돌계단과 철계단으로 이어지는 난코스여서 설악은 그 명성만큼이나 쉽지 않은 산임을 실감해야 했다. 산 중턱 이후로 하나 둘 만나게 되는 단풍나무의 붉은 빛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러나 오색지구에서 오르는 코스는 그다지 감탄할 만한 절경은 눈에 띄지 않았다.

중청대피소를 향하여
중청대피소를 향하여 ⓒ 김선호
길은 고되며 멀었고 하늘은 파랗게 펼쳐져 멀리 중청대피소를 알리는 흰 건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대청봉이 멀지 않았다. 대청봉 주변은 이미 낙엽을 떨어뜨린 나무들로 늦가을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설악산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눈잣나무 군락이 인상적인 대청봉엔 가을 설악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해 오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대청봉에서 동해바다가 보였다. 설악산을 오르기 전날 밤에 거닐었던 낙산 바다를, 설악산 대청봉에서 만나는 특별한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

천불동계곡의 단풍을 보며 하산하기 위해 비선대코스로 들어섰다. 내려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고 오래 걸어야 할 길이었지만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서라도 그 길을 걸을만 했다. 자작나무과의 수피가 하얀 거제수 나무 군락이 아름다운 길이 이어지니 엉덩방아를 찍으며 내려가는 암석구간이 그리 어렵지마는 않았다.

중청대피소에서 점심도 든든히 먹었고 주머니에 초코렛까지 넣고 산을 내려가는 아이둘은 암릉구간을 즐기듯 내려간다. 언 듯 무언가 움직인 것 같아 들여다보면 다람쥐가 유유히 길을 건너가곤 했다. 사람구경에 진력이라도 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설악산 다람쥐들은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던 터라 사람인 내가 다람쥐를 실컷 구경하리라 작정했었다.

설악산 최고봉
설악산 최고봉 ⓒ 김선호
다행히 설악산 다람쥐들은 완전히 야성을 잃지 않았다. 한 번 만져보고 싶어 아이들이 다가가면 재빠르게 도망가는 설악산 다람쥐도 숲 속에 사는 작은 동물일 뿐이었다.

하얀 수피에 노란 단풍이 아름다운 거제수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거대한 바위산을 눈앞을 가로막는다. 공룡능선이다.

'설악산에 가면 커다란 공룡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게 정말이냐고 재밌있다는 듯 웃어 넘겼던 아이들이 공룡능선의 장엄함앞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진짜 같다고 , 공룡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설악산이 빚어놓은 공룡바위를 보며 아이들이 제법 진지해져 버린다.

그러나 멀리 울산바위의 위용도 공룡능선의 위엄도, 천불동계곡의 장엄미를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우 적절한 이름을 갖은 천불동계곡의 여러폭포들, 마치 천개의 불상을 조각해 놓은 듯한 계곡의 높다란 바위들이 마치 '단풍화관'이라도 쓴 듯 울긋 불긋 물든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들이라니.

대청봉 주변에서 자라는 눈잣나무 군락지
대청봉 주변에서 자라는 눈잣나무 군락지 ⓒ 김선호
협곡이라 감히 인간의 도전이 용납되지 않았을 천불동계곡에 지금은 철계단이 잘 놓여 있어 쉽게 이곳을 오를 수 있게 되었지만 한때 꼭꼭 숨겨진 이 아름다운 비경을 찾기 위해선 거의 목숨을 걸고 바위를 탔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등산객에게서 들었던가.

그 어떤 영화가 나를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긴장속으로 빠지게 했던가. 그 어떤 소설이 이토록이나 숨막히게 다음장면을 기대하게 했던가. 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어야 했다.

눈부시게 하얀바위들, 타는 듯한 단풍의 행렬이 천불동계곡을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루할 틈이 없었고 어디 한군데 그림 아닌 곳이 없었다. 바위와 단풍의 저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넋을 빼앗겨도 좋았다. 언제 다리가 아팠던가 했었다. 순간이었지만 천당을 경험케 했던 '천당폭포'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비선대가 나올때까지 단풍은 절정을 이루었고 설악의 바위들은 더욱 희게 빛나고 있었다.

와, 진짜 공룡같다-공룡능선을 앞에 두고
와, 진짜 공룡같다-공룡능선을 앞에 두고 ⓒ 김선호
비선대의 그 아슬아슬한 바위에 걸려 대롱대며 암벽을 타는 사람들의 그 까마득한 높이에 아찔했을 때 비로소 아픈 다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아픈 다리를 잊고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비선대 암벽을 타는 사람들을 오래 들여다 봤다. 그것은 설악산에서 보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열두시간을 설악을 타고 오르며 가슴에 새겨지는 수많은 풍경들을 담았건만 아직도 부족했던가,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 그 아름답던 길 또한 결코 잊히지 않으리.

지난주(10월 8일)에 이어 설악산의 단풍소식이 들려온다. 하얀바위에 붉은 화관을 쓴 가을의 설악산이 눈앞에 삼삼하다.

가을 설악산 1
가을 설악산 1 ⓒ 김선호

가을설악산 2
가을설악산 2 ⓒ 김선호

가을설악 3
가을설악 3 ⓒ 김선호

가을설악산 4
가을설악산 4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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