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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표지
<마시멜로 이야기> 표지 ⓒ 한경BP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을 둘러싼 일련의 발표들을 보다 보면 마치 '범죄의 재구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거기에는 밀리언셀러라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속고 속이는 관계들이 난무한다. 출판사는 이중번역을 했다고 하고, 원 작가는 대리번역이라고 한다. 출판사는 정지영씨가 그 사실을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정지영씨는 정말 몰랐으나 그래도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런 대로 그림조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만일 출판사가 정지영씨 모르게 이중번역을 하고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건 정지영씨가 출판사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정작 정지영씨는 이 사태에 대해 출판사를 상대로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자. 그것의 진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를.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말해주는 현 출판계의 대필 관행이 아닐까.

출판계측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미지근한 반응뿐이다. 이 말은 벌써부터 저 보이지 않는 곳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이 있으면서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으며 그게 터졌다고 뭐 대수냐는 말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 과잉경쟁에 들어간 출판 환경에서, 책과 연예인 혹은 유명인의 공생관계 속에 작가(대필자 혹은 대리번역자)의 피해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약자였기에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이라는 연예인과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상업적 출판의 최정점에서 그 문제가 터졌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골 깊은 출판계의 불황, 어디서 온 것일까

출판사 측은 이 문제에 대해 "골 깊은 출판계의 불황 속에,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출판계의 불황을 가져온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원 번역자가 한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이 책이 "1만 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책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은 밀리언셀러가 되는 데 있어서 책 이외에 정지영씨의 이미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책은 이제 콘텐츠의 질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서 팔리는 이른바 '문화상품'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지만 혹시 여기에 출판계의 불황의 단초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문화, 상품이라는 양날의 칼

작금의 출판계를 보면 과거 '문화'에 찍혀 있던 방점이 거의 '상품'쪽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서점에 가면 거의 비슷한 콘텐츠들을 가진, 포장만 다른 상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듯한 제목과 뭔가 있어 보이는 포장을 가진 상품들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광고되고 홍보된다.

세일은 물론이고, 붙여 팔기, 심지어는 끼워 팔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팔려나간다. 이제 서점의 풍경은 대형할인매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책들은 총천연색에, 양장까지 하며 호화롭게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굳이 소설에까지 불어닥친 양장본 열풍은 우리네 출판계가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정확히 시사한다.

좋은 콘텐츠에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을 굳이 욕할 수 있으랴.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한 가지를 잃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콘텐츠의 질보다는 광고나 홍보 또는 상품 자체의 포장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혹자들은 독자들의 성향이 변하면서 책 또한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너도나도 상품을 내보내 성공을 맛본 출판계가 독자들의 입맛을 바꾸었을 혐의가 더 짙다(게다가 상품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독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마치 저 패스트푸드가 우리네 먹거리를 침투하듯이.

작가의 소외

콘텐츠보다 상품의 이미지가 책 구매의 조건이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좋은 콘텐츠의 발굴보다는 어떤 포장을 할 것인가가 출판계 초미의 관심이 된다. "요즘은 뭐가 뜬다더라"하면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기획이 작가의 힘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걸 말해준다.

작가는 이제 기획에 종속되면서 기획의 입맛에 따라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물론 확실한 상품성이 있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하겠지만 이들 역시 큰 관점에서 보면 마찬가지의 처지에 놓여 있다. 작가가 대필작가(대리번역가를 포함하여)가 되는 것은 그래서 눈물겹고 처절하다.

작가가 내놓는 작품이 하나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처절한 밥벌이를 위해 현대판 대리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내놓는 자식이 큰 성공을 이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대리모의 입장에서는 모두 눈물나는 일이 된다.

따라서 대리모들이 대신 잉태하는 작품의 질이 좋을 까닭이 없다. 대충대충, 적당히, 돈 값만 치르는 것이다. 기획자들이 그걸 관리감독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치밀한들 진짜 낳고 싶어 낳은 자기 자식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획자들은 그걸 어느 정도 용인한다. 이제 작가의 시대가 아닌 포장의 시대라고 생각하므로. 출판계에는 온통 얼굴마담 저자들과 대리모들로 넘쳐난다. 책과 얼굴마담격의 저자들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다.

작가에 기생하는 출판사와 유명인들

노력의 대가가 작가에게 가지 않는 상황에서 좋은 콘텐츠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같은 상황이 불러온 것은 인문학과 같은 진짜 콘텐츠를 담은 저작의 실종이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못생겼어도 개성이 넘치며 저마다 깊은 속내를 가진 인문학 콘텐츠들은 사라지고, 온통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화장,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실용서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비디오를 포함한 요가 실용서들은 그 엄청난 로열티에도 불구하고 몸 좋다는 연예인들을 마구 끌어들여 시장에 내놓았다. 물론 마케팅으로 무장한 이들 책들은 잘 팔려나갔다. 그런데 실용서가 무엇인가. 실용서란 '써먹는 책'이다. 그러니 그것은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보면서 따라하는 기능성이 강조된 책이다. 책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출판계 불황을 만든 요인 중에는 분명 출판계 자체에서 야기한 부분이 상당 부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읽는다'는 책의 본질을 '선물한다'거나 '써먹는다'는 기능적인 것으로 만든 것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책의 '읽는다'는 고유가치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책과 유명인들(실질적 저자가 아닌)의 공생은, 사실상 그들이 작가라는 모태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글쟁이들이 작가가 되는 그날이 오길

작가들은 흔히 자신을 '글쟁이'라고 폄하해 표현하곤 한다. 이 말에는 글이라는 창조행위를 하는 작가의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그래도 지긋지긋한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리모 역할까지 해야 하는 자기모멸감이 들어 있다.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모든 이들이 현재 처해 있는 소외 현상은 이다지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상업화가 극에 달해 있는 우리 출판계 전반의 끔찍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작가가 대접받지 못하는 한 출판계의 앞날은 절대로 밝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다시 출판계의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출판계의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부의 손길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이 낳아놓은 아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이 땅의 대리모들이 작가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고는 문화비평블로그 더키앙(thekian.ne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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