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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직소폭포도 말라 버렸네.
아! 직소폭포도 말라 버렸네. ⓒ 서종규
직소폭포는 어느 시인이 '직소'라는 이름에 숨이 멎는 듯하여 직소(直沼)하는 그 폭포에 생의 마지막을 던지고 싶은 고뇌를 겪고 있었는데, '너는 죽을 만큼 잘 살았느냐'는 소리를 듣고 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없이 부끄러워했다는 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폭포이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 천양희 시 '직소포에 들다' 중에서


가지에 붙어 있는 단풍나뭇잎들은 말라있었다.
가지에 붙어 있는 단풍나뭇잎들은 말라있었다. ⓒ 서종규
하늘이 바로 눈앞인 피안의 세계를 늘 꿈꾸며 그리워했던 직소폭포는 숨죽이고 있었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워 산꿩이 놀라 뛰어오른다는 폭포가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계곡의 고요를 불러오고 있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 바위들이 흔들하는 소리는 멈추었고, 폭포 아래의 웅덩이엔 낙엽들만 유유히 떠 제 모습을 물에 비치고 있다. 동심원 하나 퍼지지 않은 웅덩이엔 말라버린 폭포만이 하얗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 가물이 그렇게 심한 지 몰랐다. 그냥 산이 좋아 산에 오르고,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에 빠져들었던 우리들의 발걸음은 말라버린 직소폭포 앞에서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을비로 인하여 말라버린 산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가물로 인하여 금년 가을산의 단풍은 멋이 없겠다는 말이 실감났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다. ⓒ 서종규
지난 14일(토) 오전 8시, 전교조 광주지부에서 주최하는 가을꽃탐사 등반대회에 82명이 참가하여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산행을 위하여 광주를 출발하였다.

산보다 바다가 더 유명한 변산반도는 채석강이라는 유명한 바닷가가 있고, 들어가는 길이 전나무로 유명한 내소사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소금과 젓갈로 널리 알려진 곰소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오전 10시 45분, 내변산 남여치매표소를 출발하였다. 남여치매표소에서 월명암으로 오르는 길은 몹시 가팔랐다. 등산의 시작부터 가파른 길을 솟구치자 8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산행 시작부터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산길로 인하여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부터 지쳐 주저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앞으로 내딛는 발길에 집중하다보니 내변산 주변을 둘러볼 짬도 나지 않았다. 쌍선봉(459m)을 옆을 돌아 월명암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냥 산이 좋아 산에 오르고,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에 빠져들었던 우리들의 발걸음
그냥 산이 좋아 산에 오르고,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에 빠져들었던 우리들의 발걸음 ⓒ 서종규
낮 12시에 도착한 내변산 380m에 있는 월명암은 이제 가을이 들기 시작했다.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고, 텃밭에 심어진 감나무에 열린 감들이 모두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동안 불사를 했는지 포크레인 한 대가 마당에 놓여 있었다.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산들의 모습이 아련하였다. 단풍이 짙게 들어 있는 앞산에서부터 멀리 바위가 어우러진 산들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살풋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 맛을 그대로 실감할 수 있는 전망이었다.

단풍이 짙게 들어 있는 앞산에서부터 멀리 바위가 어우러진 산들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살풋이 자리잡고 있었다.
단풍이 짙게 들어 있는 앞산에서부터 멀리 바위가 어우러진 산들의 모습이 흐린 하늘 아래 살풋이 자리잡고 있었다. ⓒ 서종규
다시 직소폭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직소폭포 아래 자연보호헌장탑이 있는 곳까지는 내리막길이 심하였다. 내리막길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안타까움이 가득 차게 하였다. 길에 떨어진 참나무의 잎들은 가을임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그 잎들을 달고 있는 참나무는 모두 말라 있었다.

나뭇잎이 단풍이 든 것하고 그냥 나무에서 말라버린 것과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런데 많은 나뭇잎들이 이미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 가지에 붙어 있는 잎들은 모두 말라있었던 것이다. 나무도 극심한 가물을 이겨내려고 잎들을 빨리 떨구었는지 모르겠다. 미쳐 떨구지 못한 나뭇잎들은 단풍이 든 것이 아니라 말라 있었으니 말이다.

참나무는 잎들이 말라 있었다.
참나무는 잎들이 말라 있었다. ⓒ 서종규
오후 1시 자연보호헌장탑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직소폭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직소폭포 가는 길에 만난 조그마한 저수지도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저수지 옆을 돌아가는 일행의 모습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물이 가득하였다면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단풍이 어루러져 아름답게 반사되었건만 말라버린 저수지 흙바닥이 안타까웠다.

직소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도 모두 말라 있었다. 간혹 물이 고여있는 물웅덩이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가득 떠 있었다. 조금 올라가서 직소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는 직소폭포뿐만 아니라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인 분옥담과 백천계곡이 다 보였다. 그런데 분옥담의 물은 아직도 파랗게 빛이 났지만 흘러내리는 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백천계곡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이 전부인 것이다.

간혹 물이 고여있는 물웅덩이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가득 떠 있었다.
간혹 물이 고여있는 물웅덩이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가득 떠 있었다. ⓒ 서종규
직소폭포 아래로 내려갔다. 폭포가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은 폭포 웅덩이는 고요했다. 그 웅덩이에 떨어져 떠 있는 낙엽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오후의 햇살이 폭포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시인이 노래했던 산꿩을 깨우던 폭포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을 가물이 이렇게 심한 지 몰랐다. 그래도 직소폭포만큼은 흐를 것이라던 기대는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물이 떨어져야 하는 바위 부근은 조금 젖어 있었고, 주변의 바위들은 하얗게 말라 있었다.

직소폭포에서 재백이고개까지는 나무숲을 지나는 산길이었다. 재백이고개에서 관음봉삼거리까지 오르는 길이 바윗길이었다. 몹시 가파르고 거대한 바위 위를 지나는 산행은 몹시 힘이 들었다.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 서종규
한 봉우리를 오르자 앞에 관음봉이 보였다. 골짜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였다. 땀에 흠뻑 젖은 등이 시원하였다. 관음봉은 바위로 되어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 말라 있었다.

멀리 곰소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썰물 때인지 갯벌이 많이 보였고, 염전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 가을 논엔 누렇게 익은 벼들이 산뜻하게 보였다. 멀리 변산 앞바다의 모습을 산 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멀리 곰소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곰소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 서종규
다시 관음봉삼거리까지 몹시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가파르게 바위를 타고 올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관음봉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와 내려다보이는 내소사의 전경은 평온하였다. 우리들은 내소사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아름다운 내소사 전나무숲길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이제 가을을 맞으려는 듯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은 보였지만, 아직도 전나무숲길은 푸름이 가득하였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길 끝부분에 드라마 <대장금>을 찍었다는 연못이 나왔다. 그런데 그 연못은 바짝 말라 있었다. 말라버린 바닥에 수련 몇 촉이 안타깝게 주저 않아 있었다. 관음봉도 안타깝게 내소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봉도 안타깝게 내소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봉도 안타깝게 내소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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