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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후, 아들의 손을 잡고 집 근처의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바닷가 방파제 위에는 휴일을 맞아 낚시를 즐기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마을의 할아버지 한 분도 해 질 무렵에 낚시를 하러 나오셨습니다. 제주 특유의 갈옷 바지를 입으시고 한 손에는 낚시대를 지팡이삼아 짚으시고 다른 한손에는 낚시에 쓸 미끼를 들고 가십니다.
낚시꾼 중 한 분이 방금 문어 한 마리를 낚아 올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기꺼이 포즈를 잡아주십니다. 방파제 끝에서 낚시를 하시던 분은 낚시대가 돌에 걸려서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일찍부터 낚시를 시작한 분들은 이미 낚시를 마치고 오늘 잡아 올린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저희 부자에게 한 입 먹고 가라고 권합니다. 낚시하시는 분들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먹고 가라는 성의가 감사해서 아들놈에게 회 한 조각 집어먹이고 일어섰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방파제에서 바다 쪽으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데 유독 한분은 방파제 안에서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하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저녁에 농어 낚시를 할 건데 그 때 쓸 미끼를 낚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이 낚아 올리는 고기는 제주말로 '각제기'라고 했습니다. '전갱이 새끼'라고 합니다. 이것을 저녁에 농어 낚는데 미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분은 각제기 외의 다른 고기는 전부 다 다시 살려주었습니다. 제법 큰 볼락이 두 개나 올라왔는데도 다시 바다에 놓아주었습니다.
"왜 애써 잡은 고기를 다시 살려주세요. 회 떠서 먹으면 맛있겠는데요."
"저에게 필요 없는 고기니까 살려주는 겁니다. 저는 지금 각제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분의 간단명료한 대답을 듣고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 필요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여유로움. 이러한 여유로움이 낚시터에만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바닷물이 육지에 닿는 곳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두개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바닷물과 민물이 불과 폭이 1m 남짓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솟아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제주는 화산폭발에 의해 생겨난 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의 해안가에는 이른바 '용천수'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처럼 바닷가 바로 옆에서 민물이 솟아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민물이 나는 곳은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남탕 안에서는 10월인데도 아이들이 발가벗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추워요. 근데 사진은 찍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쌀쌀한 날씨에 찬 물에서 수영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동네 저수지에서 혹은 냇가에서 수영하고 물장구치며 놀던 추억.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제주의 시골마을이 오늘따라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반대편 여탕은 비어 있었습니다. 아직 입술에 초고추장이 묻어 있는 아들놈이 여탕 앞에서 나름대로 폼을 잡아봅니다.
멀리 해가 지고 있습니다. 제주의 바다가 서서히 저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바다는 언제보아도 여유롭고 넉넉합니다. 조금 전에 뵈었던 할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할아버지, 많이 잡으세요."
할아버지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