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이 대충 잡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어제(15일) 채택한 결의안 1718호는 비군사적 제재조치에 한정됐다.
핵 등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와 자금 등의 거래 중단 조치가 명시됐지만 이것이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개성공단사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양대 경협사업이 민간 상거래에 해당하고, 개성공단에 반입되는 물자의 경우 전략물자통제와 관련해 이미 미국 상무부의 허가와 승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결의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최대 관심사였던 해상 검색에 대해선 '요구(촉구)한다(call on)'는 수준에서 정리됐다. 요구사항도 '화물 검색 등 필요한 협력조치'다. 유엔 회원국이 재량껏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결의안 채택 후 해상 검색 불참을 선언했다. 마이클 그린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국장조차 "대북 제재가 쿠바식의 전면봉쇄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각국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두 가지 문제, 즉 결의안이 남북경협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경보를 해제할 상황은 아니다. 결의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됐을 뿐 '제로'가 된 건 아니다. 암초는 여전히 삐져나와 있다.
양대 경협사업의 경우 지속은 될지언정 지지는 받지 못할 것이다. 경협사업의 대가가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두고 도전이 계속될 것은 불문가지다. 멀리 미국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일찌감치 경협사업을 '퍼주기'로 규정해 놓았고, 경협 대가의 전용 의혹도 여러 차례 제기한 바 있다.
PSI도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발표된 '남북해운합의서'가 있기 때문에 굳이 PSI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합의서에는 '무기 또는 무기부품 수송'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를 어길 경우 정선·검색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놨다.
하지만 보기 나름이다. 미국이 해상 검색을 강도 높게 요구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결의안이 있고 국내적으로는 합의서가 있지 않은가.
유엔 안보리조차 '요구한다' 수준에 그친 만큼 우리가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과연 우리 정부가 그만한 내성과 방어력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우려를 압도하는 다른 요소가 있다. 일본이다.
다시 고개드는 '동북아 균형자' 개념
가정하자. 미국이 PSI를 본격 실행할 경우 그 무대는 한반도 인근 해역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하지만 한국은 일단 참여를 확대하지 않을 태세다. 그렇다고 미국이 자국의 함선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보내 상시 감시를 하기도 힘들다. 이 구멍을 메우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문제는 일본의 평화헌법이다. 해상 자위대를 한반도 인근 해역에 보내 북한 선박을 검색할 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본에서 다른 얘기가 나온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북한 선박을 검색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 핵 문제를 '주변사태'로 규정할 경우 '주변사태법'에 기초해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주변사태법'은 일본 주변지역에서 일본의 평화 및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에 대응하여 후방지역 지원·수색구조활동 및 기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해상 자위대의 역할을 후방지역 지원·수색구조활동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특별법 여하에 따라 '기타 필요한 조치'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럴 경우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심화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그렇다. 핵실험을 한 지난 9일, 중국 심양에서 북한 고위당국자를 만난 이화영 의원은 이 당국자가 "일본이 가장 간교하다"며 '감정'을 드러냈다고 했다. 일본이 치받을 경우 북한이 그냥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젠 기억에서도 가물거리는 '동북아 균형자' 개념을 다시 꺼내들 필요가 있다. 북한과 미·일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의 불안정·불확정 요소를 걷어내야 한다. 정부의 오락가락 태도부터 정리해야 하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포용정책 폐기 주장을 물리쳐야 한다.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