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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은 키의 말에 점점 두려운 기분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면 너의 종족은 번성하게 될 것이다. 단, 하나 약속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솟은 더 이상 키를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키가 내뿜는 엄청난 위압감이 솟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나를 경배하라. 찬양하라. 여지까지 이 세계의 생물들은 나를 경배하는 법을 몰랐고 찬양하지도 않았다.

키의 요구를 솟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을 어떻게 찬양하고 경배해야 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이곳의 모든 생명이다. 모든 것에 내가 스며 있다.

키의 말은 솟에게 너무나 어려웠지만 솟은 확실히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너는 그냥 네드족은 아니군.

키는 솟에게 슬쩍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은 단순히 자신의 심리상태를 감추거나 하는 의도의 웃음은 아니었다.

키가 웃는 모습은 솟에게 마치 비온 후 활짝 게인 날씨 속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가녀린 꽃잎이 흔들리며 거기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을 받으며 반짝하는 것과도 같았다. 솟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영상이 키의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음에도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솟의 눈에 흘러내렸다. 솟이 넘쳐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 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키는 더 이상 그의 앞에 존재하지 않았다.

키는 자신을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했지만 솟은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하겠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만은 솟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대체 저놈은 허공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상당히 기분 나쁜데.

솟은 낯설지만 너무도 분명히 의미가 전달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쉬'라는 두 짐승 중 하나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저 이상한 짐승의 말이 들리다니!'

그 뿐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울부짖는 늑대의 소리마저 그 의미가 솟의 머릿속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자! 인간들을 따라서

-모든 것이 우리의 이빨과 발톱에 달려있다!

솟이 알기로 늑대의 울부짖음은 짝을 찾거나 자신들의 영역을 알리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는데 늑대들은 나름대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런 늑대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늑대소리를 흉내 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행위는 이제 솟의 무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저놈들을 따라가며 틈을 보아 탐사선을 되찾으면 되는 거네. 내가 가진 광선총으로 방어벽 하나만 뚫어준다면 나머지는 저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고.

하쉬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는 솟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의미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전달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솟이 거느린 무리의 힘을 빌려 동족과 싸우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안심을 할 수 없어. 저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끔직한 짐승들을 믿을 수 있나? 아니 이것도 '가이다'의 농간인가?

솟이 볼 때 눈이 안 보이는 하쉬는 부정적인 기운이 감지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쪽은 지금의 상황을 낙관하고 따르려 하고 있었다.

-지금은 불안해 할 때가 아니야.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응징한 후 탐사선을 되찾고 가이다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야. 그러다 보면 이 쪽의 신호를 받고 오는 다른 탐사선의 도움을 받아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있겠지.

-그런 계획 따위는 일단 접어 두자. 넌 진작부터 가이다의 생명을 보호할 생각만 하고 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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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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