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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건물이 철암 어린이도서관
좌측 건물이 철암 어린이도서관 ⓒ 이철재
강원도 태백시 철암엔 지역 어린이, 청소년들의 도서관, 공부방, 쉼터, 교육장인 '철암 어린이도서관, 어린이공부방'이 있다. 지난 2003년 문을 연 이곳은 날로 생기를 잃어가는 탄광촌 지역 재생의 불씨가 되어왔다. 현재 철암어린이도서관에는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 168명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과거 수해기금의 일부에 추가로 기금을 모아 불에 탄 노래방 자리에 조성된 어린이도서관의 건물 시설은 상당히 낡았다. 그마저 올해 말이면 임대 기간이 끝난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새 어린이도서관을 짓자고 뜻을 모았고 현재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철암어린이도서관에 따르면 새 도서관을 짓는 데 필요한 금액은 총 2억 5천만원. 이 중 1억 9천만원은 이미 모은 상태다.

한국석탄공사는 부지와 기금 일부를 제공하기로 했다. 어린이도서관측은 지역사회에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지역 어린이들은 저금통을 모으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 기관이나 중앙 기관으로부터 공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건축비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철암 어린이도서관의 표어는 '아이 한 명이 자라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합니다'. 같은 논리로 지역 어린이도서관 건립에 나라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어린이 보육, 교육이야말로 마을공동체, 국가공동체 전체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보육, 교육은 공공적 책무여야 한다

중앙 하단 건물이 어린이도서관 에어컨 실외기가 어린이도서관으로부터 나온 것. 저 멀리 보이는 건 탄광
중앙 하단 건물이 어린이도서관 에어컨 실외기가 어린이도서관으로부터 나온 것. 저 멀리 보이는 건 탄광 ⓒ 이철재
철암 어린이도서관은 시설만 깨끗하게 꾸며놓은 단순 서비스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이 소중한 것은 그곳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그것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자체적으로 선거를 하고, 간식을 마련해 먹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과정이 그 공간의 물리적 남루함과는 별도로 공간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 역동성이란 바로 '생명'의 느낌이다. 아이들 공동체를 통해 지역사회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다.

방학 때는 사회복지과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를 받는다. 지역 학교에서는 방학식 때 대학생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인사시키며 인수인계 같은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부모가 저소득층일수록 방치되기 쉬운 아이들을 사회가 보듬어 안는 것이다. 보육과 교육을 수익자 부담으로 하면 양극화와 지방 공동화를 피할 수 없다. 보육, 교육은 공공적 책무여야 한다. 철암 어린이도서관은 그것을 지역의 시민적 역량으로 일궈나가고 있다.

시민적 역량의 성장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어린이 공공 보육, 교육을 씨앗으로 성장한 시민적 역량은 봉건적 공동체가 해체된 자리에 건조한 산업화만 남은 이 나라에 희망의 불씨이기도 하다. 특히 강원도 탄광지역처럼 생기가 없어지는 지역에선 이렇게라도 마을의 활기를 찾아 미래를 향한 힘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의 담당자 아닌 국가, 민주공화국일 수 없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린이도서관 설계에 참여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린이도서관 설계에 참여했다. ⓒ 이철재
이제 막 시민적 공동체의 싹을 틔우기 위해 노력하는 곳들에서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돈'이다. 관이나 외부의 돈이 잘못 들어오면 오히려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철암 어린이도서관도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그 지원이 혹시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주체적 역량을 파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관에서 지원하더라도 조용히, 적당액을 지원해야 한다. 막대한 하사금으로 크고 번듯한 건물과 넓은 도로 내는 것에 치중하는 일은 오히려 지역공동화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철암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나가는 지역사회의 힘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젠 더 이상 중앙에서 지시하는 새마을운동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자치역량 제고는 국가전략 차원에서도 권장할 일이다. 어린이도서관 자체도 지원대상이지만 그것의 내용인 지역의 시민적 역량도 지원대상인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지역사회에만 떠넘길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보육과 교육은 나라 차원에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민적 역량이 성장하는 싹이 어린이도서관 건립, 운영 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보육, 교육 시설은 주민들이 모금할 필요도 없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었어야 할 공공의 책무에 해당하는 부문이다. 국가가 이런 일들을 담당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더 이상 '공공'이 아니다. 공공의 담당자가 아닌 국가는 민주공화국일 수 없다.

아이들 미래가 변해야 나라 전체의 미래가 변한다

ⓒ 이철재
ⓒ 이철재
시설은 기본이다. 운영인력도 사회적 일자리 차원에서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보육, 교육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 과거 봉건적 공동체에서 대가족공동체 단위로 책임졌던 복지가 현대에 들어와 부서지고 있다. 시민적 공동체 형성과 국가 단위의 공공예산 확충만이 이 나라를 '삶의 안전'과 '미래의 희망'이 살아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극단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욱 귀해지고 있다.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소중한 대접을 받으며 공동체를 직접 형성하고 다양한 교육체험과 접할 때 그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지역사회의 미래가 변하고 나라 전체의 미래가 변할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저금통을 모으고 있다. 지역사회와 국가사회가 화답해야 한다. 아이 한 명이 자라는 데는 마을 전체가, 아니 나라 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하재근 기자는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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