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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본관 전경
경북대학교 본관 전경 ⓒ 오마이뉴스 이승욱
교수 공채 부실심사 논란을 겪고 있던 국립 경북대학교(대구 북구 산격동 소재)에 대해 법원이 해당 교수의 임용승인 무효 결정을 내려, 2년여째 끌어오고 있는 이 논란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런 가운데 교수공채 과정에서 임용 지원자들의 허위 연구실적 기재와 각 대학의 부실·불공정 교수 공채 심사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개선책 마련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년여 논란... 법원 "경북대 교수 임용 문제있다"

최근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2004년도 경북대 영문학과 교수 공개채용 심사에서 탈락한 김아무개씨가 이 대학을 상대로 낸 임아무개 교수의 '전임교원 임용처분 등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북대는 지난 2003년 말 영문학과 교수 공채(의미론분야)에 지원한 3명을 대상으로 자체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임씨를 전임교원(교수)로 채용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지원했던 김씨가 임 교수가 연구실적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허위작성하는 한편 심사위원들이 임 교수의 전공경력 및 연구경력 심사를 평가기준을 위배해서 높은 점수를 주는 등 '봐주기' 심사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학의 총장이 교원을 신규채용할 때는 공개전형의 방법으로 심사위원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야하고 부정한 행위를 한 지원자에 대해여 시험을 정지 또는 무효로 해야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임씨는) 연구실적물에 해당하지 않는 문헌을 연구실적목록에 기재해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또 재판부는 "심사위원회로서는 임씨를 당연히 심사대상에서 제외시켰어야 했다"면서 "이를 위배한 것은 임용규정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것으로 그 하자가 중대하고 객관적으로 명백하다"면서 무효 판결 이유를 밝혔다.

논란의 핵심은 '프로시딩'

사실 경북대 영문학과 교수 공채 심사 논란의 핵심은 '프로시딩'(proceeding·학술대회 발표논문)을 이용한 연구실적 부풀리기였다.

당초 심사 탈락자 김씨는 "임 교수가 '심사대상' 연구 실적물이 아닌 논문의 초록 수준인 '프로시딩을 심사대상 실적물인 '저널(Jounal: 전문학술지)' 게재 논문으로 허위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경북대는 교수 공채 지원자들에게 학위논문을 비롯해 지원자들이 최근 4년 동안 발표한 논문과 저서 등 연구실적을 표시한 '연구실적목록'과 발표 시점과 상관없이 실적을 기록하는 '연구실적총목록'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임 교수의 연구실적목록에 따르면 총 5편의 연구실적이 논문으로, 연구실적총목록에 따르면 총 5편의 전문학술지(게재 논문)와 1편의 학술회의 발표논문(프로시딩)으로 등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임 교수가 두 목록에서 전문학술지와 논문이라고 분류한 '논문' 5편 중 2편은 프로시딩(발표논문)인 것으로 확인됐고, 1편의 논문은 박사논문과 발표 일시만 다를 뿐 제목이 동일한 논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대는 연구실적목록을 ▲저서 ▲논문 ▲프로시딩 ▲기타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중 심사대상은 저서와 논문으로 제한시켜 놓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시딩 이용한 연구실적 부풀리기?

사진은 경북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의 교수초빙 지원서 연구실적목록 화면. 인터넷상에서 교수 공채 지원자들은 연구실적을 ▲논문 ▲저서 ▲프로시딩 ▲기타로 구분해 작성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임 교수를 제외한 다른 지원자들은 프로시딩을 프로시딩으로 구분했지만 임 교수는 "논문으로 인정받을 만하다"는 이유로 논문으로 구분했다.
사진은 경북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의 교수초빙 지원서 연구실적목록 화면. 인터넷상에서 교수 공채 지원자들은 연구실적을 ▲논문 ▲저서 ▲프로시딩 ▲기타로 구분해 작성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임 교수를 제외한 다른 지원자들은 프로시딩을 프로시딩으로 구분했지만 임 교수는 "논문으로 인정받을 만하다"는 이유로 논문으로 구분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에 따라 김씨는 "A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심사대상 연구실적이 아닌 프로시딩을 논문으로 허위기재한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실제 평점 16점인 논문 2편에 불과하지만 20점인 논문 5편으로 인정받는 등 부정한 방법에 의해 교수로 채용된 만큼 심사자체 무효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임 교수는 "(자신이 논문으로 제출한 것이) 프로시딩은 맞지만 영미권에서 인정받은 영문학 프로시딩인 만큼 국내에서 출간된 프로시딩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면서 "논문으로 인정받을 만하기 때문에 지원서를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재판부는 "심사위원회가 심사대상으로 삼아야 할 연구실적 중 논문이라 함은 프로시딩을 모아 발간된 프로시딩즈(proceedings)에 게재된 논문이 아니라 논문집 형식으로 출판된 문헌집에 게재된 논문"이라면서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지난 2년여간 지리하게 끌어왔던 경북대 영문학과 교수 공채 심사 논란도 새로운 전기를 맞은 셈이 됐다. 그동안 김씨는 각종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검찰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했지만 국가기관으로부터 '임용 무효'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태가 이러한 국면에까지 이른데는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경북대는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도 공정한 자체 조사보다는 임 교수 편들기에 전력했다는 인상이 짙었다.

"부실심사와 어정쩡한 대응이 더 문제"...경북대는 항소로 맞대응

특히 이번 논란의 단초가 된 것은 임 교수의 연구실적 허위기재 의혹뿐만 아니라 당초 심사위원회의 부실한 심사와 '어정쩡한' 대응에 있었다는 지적이다.

경북대 영문학과는 김씨의 심사 무효 진정이 계속되자 지난 2004년 10월 연서로 제출한 의견서에서 "공채 심사 당시 국내 프로시딩즈(발표논문집)와 영미권 프로시딩즈간의 질적인 차이가 현저해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기로 논의했다"면서 "연구업적에 대한 평가는 심사위원들이 논문의 질을 판단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지원자의 프로시딩은 심사대상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반면 '특정인의 프로시딩만 심사대상 연구실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나올 수 밖에 없게 했다.

또 당시 심사의견서에 따르면 "(A교수의 프로시딩이 실린) 프로시딩즈는 MLA·LLBA와 같은 언어학 데이터 베이스에도 등록되어 있으므로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인용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돼 전문학술지로 심사위원 전원이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임 교수의 해당 프로시딩은 당시 교수회의 의견서에서 거론한 MLA·LLBA 데이터 베이스 등에 등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당시 심사위원회가 제대로 관련 자료를 검토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최아무개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공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해당 프로시딩이) 데이타베이스에 실렸는지는 알 수 없고 전공 분야 심사위원들이 실려있다고 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북대는 이번 법원의 무효 확인 판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북대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북대 영문학과 교수 공채 논란은 항소심 재판에서 명백히 판가름 날 전망이다.

끊이지 않는 연구실적 부풀리기·부실심사 논란

한편 경북대뿐만 아니라 타 대학에서 프로시딩과 논문 중복 기재 등 교수 공채 지원자들의 연구실적 부풀리기 등으로 인한 부실 심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감사원은 2005년도 부산대 B학과 교수공채 심사에서 합격한 김아무개 교수에 대해 임용 취소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대학 측에 통보했다.

당시 김 교수가 연구실적으로 제출한 논문이 중복게재(자기표절)하는 등 지원서를 허위작성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국내에서 금품 수수가 아닌 사유로 교수 임용이 취소된 사례로 기록됐다.

이외에도 경북대와 유사한 사례로 서울지역 사립 K대학교도 지난 2004학년도 영문학과 심사 과정에서 최다득점 후보로 선정된 한 지원자가 프로시딩을 논문으로 허위기재해 총장 면접을 앞두고 불합격 처리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교수 공채 지원자들의 연구실적 부풀리기 등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각성 뿐만 아니라 각 대학 차원에서도 불법적인 지원자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공정한 심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발표논문집이라서 프로시딩도 논문"?
[용어해설] 논란이 되는 프로시딩과 논문의 차이

프로시딩(Proceeding, 학술대회 발표논문)은 학술대회에서 공개 발표를 위해 발표자가 작성한 논문의 초록(初錄)이다.

학술대회 주최측은 대회를 앞두고 발표자들이 작성한 10여매 내외의 프로시딩을 모아 학술대회 당일 또는 추후 프로시딩즈(Proceedings;학술대회 발표논문집)를 발간한다.

반면 저널(Jounal; 전문학술지) 등 정식 논문은 20매 내외의 논문 원고를 완성해 학술단체에 투고하면 그 원고를 2인 이상의 심사위원이 절차를 통해 심사를 해 합격 판정 후 정식 논문으로 인정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로시딩은 용어(발표논문)나 형태에서 학계에서도 흔히 논문이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인에게는 그 구분이 혼돈스럽다.

그러나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교수채용 심사에서는 논문과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 국내 학계의 의견이다. 현재 대다수의 대학과 학계에서도 프로시딩과 논문을 엄격히 구분해 연구실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배점을 주지 않거나 논문 보다 적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다.

부산대 영문학과 한 교수는 "프로시딩은 정식 논문과 심사 과정을 거친 논문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당연히 교수심사 과정에서는 프로시딩을 논문으로 인정해서 같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충남대 영문학과 한 교수는 "프로시딩 중에서도 권위있는 학회를 통해 영미권에서 출간된 프로시딩은 국내 프로시딩과 질적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논문과 프로시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프로시딩을 논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으로부터 임용 무효 판결을 받은 경북대는 다른 논리를 펴고 있다. 경북대 한 관계자는 "프로시딩즈가 뭐냐 학술대회 발표논문집이 아니냐"면서 "학술대회 발표논문집이면 논문집인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결국 경북대의 입장은 프로시딩즈가 학술대회 발표'논문집'인 만큼 논문집에 해당하고, 프로시딩즈에 실린 프로시딩은 정식 논문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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