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이 불러온 한반도의 긴장사태를 풀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강경일변도의 반응을 보이면서 재빠르게 대 북한 제재조치를 가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 강성국가 중에 미국과 일본 못지않은 '강펀치'로 눈길을 끄는 나라가 호주다.
호주는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바로 다음날 북한국민의 호주입국을 금지시켰다. 바로 며칠 후에는 사람이 아닌 북한선박에 대해서도 호주입항을 금지시켜서 철저한 대 북한 봉쇄에 나섰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유엔 안보리의 대 북한 제재에 적극 동참하다는 명분으로 호주가 이렇듯 전면에 나서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얼까?
핵실험 후 북한제재의 선봉에 나서
호주의 대 북한 제재조치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북한선박의 해상검색을 위해 PSI 참여국가에 군인과 군함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일본에 이어서 북한으로의 송금을 금지시키는 금융제재 조치도 발동했다.
그런데 호주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게 또 하나 있다. 미국 일본과는 달리, 대 북한 제재와는 별도로 "북한에 400만 달러 상당의 원조를 계속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국제사회를 향해서 "북한의 선량한 국민들이 굶주리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이렇듯 냉온탕을 넘나드는 호주의 정책은 강력한 제재와 지속적인 원조라는 측면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읽힌다. 대 북한 제재정책을 총괄하는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제재에 해당되는 대목들이다.
북한 핵실험이 실시된 다음날인 지난 10일 오전,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천재홍 호주주재 북한대사를 집무실로 불러서 "북한 외교관을 추방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북한사람들의 호주입국을 금지하겠다"고 통보했다.
다우너 외무장관은 15일 의회답변을 통해서 "호주는 대량살상무기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선박의 입항금지와 해상검색을 지원하기 위해서 PSI 참여국에 호주군함과 병력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음날 호주국영 abc-TV에 출연해서 "호주는 지난 7월에 발사된 북한 장거리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다, 이번 핵실험을 통해서 북한이 확보한 핵무기를 호주에 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호주가 미국 등과 협조하면서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한편 다우너 외무장관은 17일 "북한 핵개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업과 개인의 대북송금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금융제재조치는 일본에 이어서 호주가 두 번째다.
미국과 함께 PSI 주도하는 호주
호주가 이렇듯 대 북한 제재에 발 빠른 행보를 보이자 국제사회가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고 호주국영 abc방송 등이 보도했다. 그러나 호주의 입장은 단호하다. 자체방위의 어려움을 겪는 호주가 국제사회와 협조해서 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호주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받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PSI 핵심 참여국이다.
14일, UN안보리가 대 북한 제재를 만장일치로 결의하자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은 즉각 PSI를 거론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채널7에 출연해서 "안보리 결의안이 아주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어 놀랍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대 북한 제재결의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15일 의회답변을 통해서 "PSI가 북한선박의 화물검색을 실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여건을 제공했다, 호주는 PSI가 효과적으로 운용되도록 군함과 병력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한편 브란던 넬슨 호주 국방장관도 호주통신(aap)과의 인터뷰에서 "호주가 비록 인구 2천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PSI 시행을 위해 병력을 지원할 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다, 국제사회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보다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체방위력이 부족한 호주의 고민
호주는 자체방위력을 완전하게 갖춘 나라가 아니다. 국토는 넓은데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주는 오랫동안 모국이었던 영국과 20세기의 강자 미국의 분쟁지역이나 전쟁터로 나가서 전공을 세우고 그들의 보호를 받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 연유로, 호주는 1899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보아전쟁' 이래 전 세계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에 참전했다. 1, 2차 세계대전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비롯해서 최근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해서 현재까지 호주군인이 두 나라에 남아있다.
특히 호주는 1951년 9월 미국 뉴질랜드와 맺은 태평양안전보장조약(Pacific Security Pact)에 크게 의지한다. 오스트레일리아(A), 뉴질랜드(NZ), 미국(US)의 머리글자를 따서 앤저스조약(ANZUS Treaty)이라고도 한다.
한 마디로 호주와 미국은 오랜 혈맹인 셈인데, 그런 연유로 호주가 미국에 지나치게 치우치다보니 미국의 적국들로부터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무슬림 국가들로부터 항상 테러위협을 당하고 있다. 호주통신(aap)의 보도에 의하면 호주는 미국 다음으로 테러위협을 크게 받는 나라다.
호주의 고민이 거기에 있다. 최근 북한문제와 관련하여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호주 국립대학 전략방위문제 연구소의 폴 딥 교수는 "호주 외교정책의 중심이 동북아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중·일 3대 주요교역국들이 그곳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호주가 왜 대 북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분석이다. 결국 미국, 일본과 협력해서 안보, 경제를 챙기면 1석2조의 국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주민 돕기에도 적극적인 호주
호주는 북한을 제재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총리, 외무장관, 야당 당수 등이 약속이나 한 듯 "식량위기를 맞게 될 북한주민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캐빈 러드 그림자내각 외무장관은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다 보면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는 식량 공급 등 인도적인 지원까지 중단하게 된다"면서 "호주가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1974년, 아직 동서간의 긴장이 팽팽했던 시기에 호주는 한국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로서는 맨 처음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외무장관을 북한으로 보내서 도운 나라도 호주다.
뿐만 아니라, 호주가 북한의 식량지원과 6자회담 측면지원 등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고 대사급 외교관을 파견한 몇 안 되는 서방국가여서 북한으로서는 더 없이 좋은 해외창구다.
다시 한 번 호주의 역할을 기대해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실제로 북한 핵실험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을 돕는 문제를 소리 나지 않게 검토하고 있는 나라도 현재는 호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