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뭇잎을 가리켜, 나뭇잎이 나무를 가리고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그에게 나뭇잎은 나무의 은폐였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뭇잎은 나무를 가리고 있는 은폐의 베일 같은 것이 아니라 나무의 자기 표현이다. 나무는 나뭇잎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한다. 가을엔 그 표현이 갖가지 색으로 나타나 노랗거나 빨갛다.
계곡을 바로 옆에 둔 단풍은 계곡물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왜냐고? 붉게 익은 뜨거운 몸 좀 식히려고.
단풍은 그냥 곱게 물이 든 나뭇잎이 아니라 사실은 나무의 손짓이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나뭇잎을 물들여 우리들을 손짓한다. 때로는 노랗게, 때로는 붉은 손짓으로.
단풍이 나무의 손짓이 아니라면 가을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보러 그렇게 산을 찾을 리 없다. 사람들도 나무의 손짓을 마다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다.
초록의 나뭇잎은 우리를 부르는 나무의 손짓이라기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수신호이다. 그래서 봄이나 여름엔 산에 가도 어지간해선 사람들이 나무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다 가을엔 모든 나뭇잎이 우리를 부르는 손짓이 된다. 만약 가을에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있는 나뭇잎이 있다면 그건 아직 여름 더위가 쥐꼬리만큼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수신호이다.
지나가다 단풍이 아주 가까이 있어 쉽게 그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라면 손금도 한번 봐주시라. 단풍잎의 손금을 봐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음, 손금을 보니 가을마다 그리움을 많이 타는 운명이군. 온 종일 손짓하여 그리운 이를 부르게 될 운명이야.
그러나 나무는 그 운명을 마다않는다. 우우우, 모든 손을 일제히 펼쳐 빨갛게 불꽃처럼 날리도록 손을 흔든다. 그리운 이가 오기 전엔 그리운 이를 부르는 손짓이지만, 그리운 이가 왔을 때는 그리운 이를 반갑게 맞는 환호의 손짓이다.
그러니 가을엔 단풍을 보러가야 한다. 가서 우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우리는 단풍에 물들어야 한다.
가을엔 꼭 하루 시간을 내서 산으로 단풍을 보러 가야 한다. 단풍은 머리맡에서만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 그 몸을 낮추어 우리의 발밑으로 주단을 깔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을에 꼭 단풍을 보러 어디론가 산으로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