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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고향집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핀 억새들입니다. 어렸을 땐 저렇게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많아졌더군요. 아마도 예전에 거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저 만큼 피기 전에 누구네 집 거름이 되었겠지만 요즘에 누가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어 억새만 좋은 세상 만난 것 같습니다.
해질 무렵 억새와 햇살은 참 잘 어울립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억새 그리고 해지는 저녁놀… 우리 고향에서 매일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김제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들판뿐이라 풍경으로 하면 내 놓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지평선은 자랑할 만큼 멋집니다.
저 길로 학교를 다니고 어른이 되고 장을 보고 또 죽으며 꽃상여를 타고 가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얀 꽃들이 수놓아진 꽃상여를 메고 장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을 어귀에서 죽은 할아버지의 옷을 태우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해가지는 때면 굴뚝에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났죠. 꼬마일 때는 동네에서 놀다가 집에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 집으로 기어들어가곤 했습니다. 김제는 평야라서 제가 놀던 곳 어디에서나 우리 집 굴뚝이 보였답니다.
휴대폰도 호출기도 없던 때에 굴뚝의 연기는 일종의 밥 먹으러 오라는 신호 같은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연기가 나면 아이들은 "야, 니 네 집 밥하는 갑다. 언능 가봐라"라고 이야기를 했었죠. 그럼 이제 놀이는 파하고 집으로 하나 둘 돌아갑니다.
그땐 간식 같은 것이 많지 않아 밥을 꼭 챙겨 먹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보일러가 돌아가는 때만 연기가 보입니다. 동네에 뛰어 노는 아이들을 찾아 볼 수 없고 밥도 예전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아련하게 고향의 옛 모습이 떠오르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제가 풀잎 배를 만들어 띄우던 냇가도 사라지고 풀 잎 배를 따라 걷던 구불구불한 수로도 직선화돼 버렸답니다.
시골이나 도시나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갈대는 여전히 아름답고 노을은 또 저렇게 지평선 가득합니다. 고향 그리고 억새, 그리고 저녁놀 모두 그리운 친구들입니다. 고향에 그렇게 가을이 가득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농살물 살땐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 SBS 유포터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