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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대청봉을 다녀왔다. 정말 생각지 않은 산행이었다. '우리 다음에 히말라야 가자'하는 것만큼 감이 오지 않는, 우리와는 무관한 그런 일로 여겨지는 게 우리 가족이 대청봉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누구는 대청봉 올라갔다가 발톱이 빠졌다고 하고, 또 누구는 올라가다 숨이 깔딱 넘어갈 뻔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대청봉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하면서 전쟁에 나가는 사람마냥 비장한 각오로 올라가야 한다고 미리 겁을 주었기에 난 애초부터 대청봉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거기다 야산 올라가면서도 징징거리는 큰 애와는 대청봉을 감히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청봉은 나에게는 정말 히말라야와 다름없는 그런 산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 중 큰 애만 대청봉 등반에 부적합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걸핏하면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다리야' 하는 약골이고, 남편은 알레르기 비염으로 재채기를 근 한 달 동안 해서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기에 역시 대청봉은 무리였다.
그래도 좀 나은 사람이 9살 둘째 딸 정도였다. 패잔병 수준의 등반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고 힘들다는 대청봉을 올라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는데 우리는 그런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들을 뛰어넘고 자랑스럽게도 대청봉 등반에 성공했다. 자, 지금부터 그 험난한 여정을 소개할까 한다.
도깨비에 홀렸는가?
어느 날 저녁에 남편이 도깨비한테 홀린 사람처럼 난리를 쳤다. 대청봉에 안 올라가겠다고 반기를 들었다가는 날벼락이라도 맞을 것처럼 서둘렀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대청봉을 다녀왔다며 안 갔다 온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이 남들 다 갔다 왔다는데 듣는 것에만 만족할 리가 없었다.
나도 은근히 대청봉 거길 다녀오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심이 보태지면서 엉겁결에 대청봉 등반에 동의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은 놔두고 둘이만 다녀오고 싶은데, 남편은 아이들에게 인내심도 키우고 추억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꼭 데려가야 한다고 우겼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아이들을 꼬드겼다. 큰 애는 비싼 수첩을 사준다고 하고, 작은 애는 대청봉을 잘 다녀오면 돈 5천원을 주겠으니까 아바타도 사고 과자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마음대로 쓰라고 했더니 대청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쾌히 승낙했다.
대청봉 등반 전날 밤.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자야 한다고 아이들을 침대로 보내고 남편과 난 다음 날 산에서 먹을 걸 준비했다. 남편은 라면, 물, 과자 이런 것들을 챙기고 난 산에서 먹을 아침밥을 준비했다. 햄을 굽고 계란 부침을 하고 김치를 봉지에 담고 김도 챙겼다. 그런 걸 준비하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내가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아이들이 정말 올라갈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 때문에 잠이 안 왔다. 그런데 큰 애는 다른 이유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도대체 대청봉이 뭐 길래 마트에서 먹을 걸 잔득 사오고, 저녁 늦게까지 부스럭거리며 짐을 싸고, 엄마와 아빠가 분위기도 평소하고 좀 다르고, 진짜 수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설악산에 뜬 둥근 달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와 한계령을 향해 달릴 때 달이 떠있었다. 보름을 갓 지난 달은 산 정상 바로 위에 떠 있었는데 굉장히 크고, 밝은 노란 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까만 하늘에 뜬 달은 무척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니까 잘도 볼 수 있어 좋다고 한 마디씩 했다.
대청봉 등반이 시작되고, 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한계령 휴게소는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지팡이까지 들고 등산화로 무장한 채 모두들 들뜬 표정이었다.
한계령 매표소에서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초입은 계단을 올라가는 길인데, 여기서 사실 좀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빈 속에 경사 90도 수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려니 숨이 차오르고 굉장히 힘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올라가고 있었다.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자기들이 좋아하는 핫쵸코도 비싼 것으로 사고, 사탕도 두 봉지나 사고 과자에다 맛있는 걸 많이 준비했고, 또 거기다 내려왔을 때 상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나는지 내가 힘들어하는 코스에서 의외로 아이들은 가볍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쳐지는 대원이 없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해 있는 눈치였다.
남편이여! 제우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숲을 벗어나야 오히려 그 숲이 잘 보인다'는 말처럼 좁은 집에 함께 있을 때는 남편에 대해서 잘 몰랐었는데 집을 떠나 산에 오르면서 남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하는 면이 생겼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무겁겠구나, 하는 그런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어느 책에서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가장들을 '제우스 콤플렉스'라고 표현했다. 젊잖아 보이고 싶어하고, 울고 싶어도 가장이라는 권위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힘들지만 내색도 못하는 이런 면을 권위적인 아버지상으로 묘사하면서 항상 아버지의 역할에 더 중점을 두는 그런 남자를 칭하는 표현이었다.
남편의 경우가 꼭 거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자기 배낭에도 먹거리가 잔뜩 들어있어 굉장히 무겁고, 또 아이들이 들기 싫다고 해서 아이들의 짐까지 양 팔에 걸고 경사가 가파른 한계령 등산로를 오르려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도 내가 조금만 비틀거려도 "짐 내가 들고 갈까" 하면서 행여나 내가 못 올라갈까 노심초사했다.
솔직히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자신의 힘듬보다는 가족에게 더 신경을 곤두세우며 올라가고 있었다. 오합지졸 등반대의 총책임자임을 자처하며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도 남편이 가족에게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남으로 자라온 사람 특유의 희생정신이라면 희생정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친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희생정신이 가득한 가장, 가족의 입장에서는 책임감 강한 아버지고 남편이기에 만족스러울 수가 있는데 본인도 그럴까? 자기의 욕구보다는 가족에게 모든 걸 맞춰가면서 살다가 가족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채워주지 않았을 때 심한 상실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이 이 책임감에서 좀 벗어나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덧붙이는 글 | 지난 휴일에 가족과 함게 한계령으로 해서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코스로 내려왔습니다. 가족을 더 이해하게된 의미있는 등산이었습니다. 군에 다녀온 사람이 한동안 군대 얘기만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대단한 등반이었기에 할 말이 많고, 그래서 3회에 걸쳐서 얘기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