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약 1300여명의 경찰이 있다. 이른바 자치경찰제가 지난 7월부터 시행이 되었고, 제주도 전체가 특별 자치도로 되어 이른바 시범을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육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경찰이 1만여 명, 육지에서 오는 시위대가 5천여 명으로 추정되고, 제주도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약 1만여 명이 모일 것으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내다봤다.
약 15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제주행 배에는 일반인은 약 50여 명이고, 나머지는 다 경찰이었다. 승무원의 말에 의하면 지난 20일부터 경찰들이 배를 타고 제주로 갔다고 한다.
그렇게 가는 일반인들 50여 명도 십여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를 하려고 제주도로 가는 길이었다.
배는 모처럼 내리는 가을 단비를 맞으며 제주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람 때문에 쉽게 접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접안을 위해 바다 위를 헤매고 있으니 한 농민이 경찰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한 마디 한다.
"나가, 75년도에 제주도에 오고 처음 완디, 왜 안 내려 조뿌요? 순박한 농민들만 탔으면 내려 줄낀디, 경찰들이 타서 안 내려 조뿌요."
58년 전, 4·3 사건이 있은 이후로 2006년 10월 22일에 육지에서 경찰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꺼번에 제주도를 찾은 것이 아닐까? 이날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측에서 집계한 육지에서 온 인원은 경찰과 시위대를 합하여 약 1만5천여 명이고, 여기에 제주도의 시위대와 합하면 2만5천여 명이 모인 것이다.
버스를 타고 협상장이 있는 중문관광단지로 가는 길에는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주장하는 노란 깃발들이 마치 시위대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반대 목소리를 높이야 우리나라 협상단에 힘이 실리지 않겠쑤까?"
제주 사투리가 배어 있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들으니 졸고 있던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제주의 길목마다 진압봉을 칼처럼 들고 있는 경찰들을 보며, 북한의 핵보다 더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22일 밤에는 한미FTA 협상저지를 위한 촛불 문화제를 하였다. 낮에 내린 비로 흙은 젖어 있었고, 바람이 불어 촛불 하나조차 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와 의지로 반대 목소리를 크게 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