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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의 참혹한 죽음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로 묻혀 버렸다. 솟은 그들에게 절대자로서 인식되어가고 있었고 절대자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솟은 그차와 모로의 침통한 기색을 보고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목적, 수이를 구하는 것만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솟은 인간과 늑대의 무리를 이끌고 수이와 함께 지나왔던 황무지를 지나갔다. 그곳을 넘어서면 바로 자신이 고향이자 ‘하쉬’들이 장악한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무리의 뒤에 쳐져서 간신히 따라오는 두 마리의 ‘하쉬’들은 매우 지쳐있었고 건강까지 나빠져 있었지만 솟의 무리들은 그들을 애써 돌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솟은 다른 ‘하쉬’들을 공격할 때 그들이 꼭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황무지를 거의 다 지나올 무렵 솟은 일행을 멈추고 땅을 파서 덩이식물의 뿌리를 되도록이면 많이 캐내도록 지시했다. 그 이유를 일행은 황무지를 지나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솟이 살던 그곳은 이상한 식물이 듬성듬성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이 황무지도 사막도 아닌 곳이었음에도 흙에는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없어 보였다. 모로가 듬성듬성 나 있는 이상한 식물의 잎을 따서 씹어보더니 인상을 쓰며 도로 뱉어 내었다. ‘하쉬’들 중 하나는 이상한 식물을 보고서는 갑자기 힘이 나서 떠들었다.

-우가라 우가라

솟은 ‘하쉬’들이 그 이상한 식물을 ‘우가라’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솟을 비롯한 일행은 이상한 식물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곳에서부터 발걸음이 조심해지기 시작했다. 늑대들이 조심스럽게 일행의 무리에서 앞장서 나오더니 신중하게 냄새를 맡으며 솟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숨까지 죽여 가며 발소리도 죽여가며 신경을 곤두세우자 주위는 괴괴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던 일행은 늑대 무리가 일제히 멈춰 서 더 이상 나가려 하지 않자 공포에 질려 일제히 웅성이기 시작했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때가 온 것이다. 맞서 싸워야 한다!

솟이 부르짖었지만 그 말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솟의 말을 전달하던 사영은 이제 죽고 없었다. 솟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으나 이미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꽤에에에엑!”

몇몇 사람들이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 여겨질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솟이 느끼기에 무엇인가 명확히 알 수 없는 선율이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고 있었고 늑대들은 그 소리에 꼬리를 말고 그 자리에 엎드려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솟은 정신을 집중하여 선율을 들어보려 애를 썼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솟은 그 선율이 의미하는 바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포와 분노! 그것에 굴복하라!

솟은 당황해 하는 무리들을 향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영이 없이는 솟이 전하는 의미는 전혀 전달될 수가 없었고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삐아르르소오르르 소소삐

가까이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선율에 솟은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선율은 무리를 따라온 ‘하쉬’들이 들고 온 작은 물건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충격과 좌절에 빠져 혼란스러워 하던 인간과 늑대의 무리들은 점차 평안을 되찾기 시작했다. 솟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어 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생명의 소리! 잠자는 모든 것을 일깨우는 소리!
-깨어나라 모든 존재들이여 너와 나는 원래 모두가 하나였다!
-이제 모두가 숨쉬는 이 땅에서 맹렬히 꿈틀거릴 때가 왔노라!
-죽음은 하나 되는 것일 뿐!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마라!

솟이 지르는 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춤사위를 보고 솟이 부르고자 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인간과 늑대의 힘찬 고함과도 같은 노랫소리가 조금씩 커져가며 그들 사이에 감돌던 공포심은 조금씩 가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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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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