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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로그램 최초로 왼쪽 자리에 여성 앵커를 앉힌 두 프로그램. KBS 2TV는 기존 관행을 깨고 지난해 <뉴스타임>의 양영은 앵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오유경 앵커(사진 위)를 왼쪽 자리에 배치했다.
시사프로그램 최초로 왼쪽 자리에 여성 앵커를 앉힌 두 프로그램. KBS 2TV는 기존 관행을 깨고 지난해 <뉴스타임>의 양영은 앵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오유경 앵커(사진 위)를 왼쪽 자리에 배치했다. ⓒ KBS
[채혜원 기자] 지난 9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중파 TV 방송 저녁뉴스의 단독 진행을 맡은 여성 앵커 케이티 쿠릭(48)은 첫 방송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약 1400만명의 시청자를 단숨에 끌어 모은 쿠릭의 인기 비결은 '전문성과 새로움'인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기존 틀을 깨고 시청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 중심의 뉴스보다 인터뷰, 현장 르포식의 뉴스를 전진 배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기자나 아나운서로 오랜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갖춘 중년 여성 앵커를 볼 수 있을까. MBC 김은혜 앵커나 KBS 양영은 앵커 등 기자 출신 앵커를 내세우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여전히 남성 앵커는 보도국 소속의 기자, 여성 앵커는 아나운서라는 오래된 관행을 깨지 못하고 있다.

뉴스, 시사 프로그램, 중계방송 등에 주로 투입되던 아나운서들이 최근 쇼, 연예오락 프로그램 등에 다양하게 진출하면서 여성 아나운서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2003년 지상파 3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SBS의 여성 아나운서 비율이 80%로 가장 높고, KBS 61%, MBC 44% 순이다. 방송 3사 아나운서직의 여성 비율이 59%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아나운서의 수 증가가 전문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매년 새롭게 충원되는 젊은 여성 인력으로 프로그램 진행자가 교체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젊은 여성 아나운서로 진행자가 교체된 후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예쁜 아나운서 효과'라고 분석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여성 아나운서의 전문성을 고려한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KBS는 지난해 시사 프로그램 최초로 왼쪽 자리에 여성 앵커를 앉혔다. 보통 왼쪽 자리에 앉는 메인 앵커는 진행의 강약을 조절할 뿐 아니라 주요 뉴스를 보도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 주인공들은 KBS 2TV <뉴스타임>의 양영은 앵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오유경 앵커였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임수민 KBS 여성협회장은 "가장 시급한 것은 여성 방송인을 둘러싼 제작진과 경영진의 의식 변화"라며 "여성 방송인들도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가부장 중심의 기존 관행을 깨는 데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수연 한국여성개발원 평등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외모 위주로 선발해 입사 초기에 주목받는 프로그램에만 투입하다 보니 여성 아나운서들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성 아나운서들과 달리 여성 아나운서들은 입사 직후 바로 프로그램 주요 진행자로 발탁돼 전문성을 개발할 여지가 없이 투입됐다가 경력 5년에서 10년 사이에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2004년부터 지상파 방송 아나운서 공채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강미진(27·가명)씨는 "지난 10월 12일 KBS 아나운서 카메라테스트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이 뉴스 원고를 읽기도 전에 지원자들의 얼굴만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을 봤다"며 "이는 여성 아나운서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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