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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지요.
형님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지요.
24일, 옷을 한 벌 샀다. 가을 분위기가 나는 주름치마와 윗옷을 샀다. 내가 입으려고 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샀다.

지난번에 시댁에 내려갔더니 사촌 형님이 그러시는 거였다. “동서야, 동서는 옷 어데서 사노? 올 때마다 다른 옷 입고 오는데 옷이 다 예쁘다.” 그러면서 형님은 나를 이리저리 돌려세우며 구경했다.

“형님, 이 옷 예뻐요? 이거 얼마 안 주고 산 거예요. 내 옷들 다 몇 천 원짜리예요.”
“그래? 어데서 사는데 돈이 그리 헐하노? 나도 옷 좀 사다주라.”
“형님 그럴까요? 그런데 형님이 어떤 스타일 좋아할지 내가 우째 아노? 사이즈는 얼만데요?”
“사이즈야 뭐 동서보다 쪼매 더 큰 거 사마 되고, 그라고 동서가 골라주는 거는 다 이뿔꺼다. 그라이 괜찮다.”

나한테 형님이 되는 사촌 동서는 나보다 나이가 2살이나 어리다. 우리 둘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다. 형님이 우리보다 한 달 보름 정도 먼저 했다. 결혼 날은 우리가 먼저 받아놨는데, 사촌 아주버님이 동생보다 늦게 장가갈 수 없다며 급하게 선을 봐서 형님이랑 결혼했다.

형님은 손아랫동서인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했단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시댁으로 신행을 갔다. 예전 풍습에 악귀를 쫓기 위해서 하는 액막이용 절차가 있는데, 새색시가 시댁 대문턱을 넘어설 때 불을 붙인 볏단을 건너서 넘어오면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불붙인 볏단을 살포시 건너서 시댁 대문을 넘어 들어왔다. 그리고 시어른들께 절을 올렸다.

새색시가 절을 올릴 때 양옆에서 부축해주는 하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그때 내 오른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나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사촌 형님이었다. 형님은 나를 보는 첫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동서야, 오느라 고생했제? 동서야, 반갑다.”

나도 사실 윗동서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거북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형님의 그 한마디에 우리 관계는 저절로 정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아래 동서가 되었고 형님은 손위 동서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돕는 사이가 되었다.

사촌 아주버님과 형님 내외. 옥골선풍이던 사촌 아주버님도 힘든 농사일 하시느라 이리 변했습니다. 아주버님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합니다.
사촌 아주버님과 형님 내외. 옥골선풍이던 사촌 아주버님도 힘든 농사일 하시느라 이리 변했습니다. 아주버님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합니다. ⓒ 이승숙
우리 둘은 비슷한 시기에 시집을 와서 하나하나 시집살이를 같이 배운 까닭에 은근하게 동지애 같은 것이 싹텄다. 그래서 나는 형님을 만나면 한 시대를 같이 산 동지 같은 기분이 든다.

형님은 우리 집안의 장손 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거기다가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동네에 젊은 사람이라곤 형님밖에 없다보니 온갖 집안 대소사 일이 다 형님 몫이다. 시댁 동네엔 우리 일가친척들이 많기 때문에 형님은 처신하기도 쉽지 않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하며 산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나는 큰집으로 올라가서 제사 음식 만드는 걸 돕는다. 우리 어머님은 나더러 그러신다. “야야 큰 아야, 다른 며느리들은 몬 올라가도 니는 올라가거라. 올라가서 너거 형님 도와드리거라.”

우리 시아버님은 형제간 중 맨 막내시다. 그래서 우리 집엔 제사가 없지만, 큰집엔 3대 봉제사를 해야 할 만큼 일이 많다. 나와 우리 동서들은 제사가 없어서 명절이라도 힘들 일이 없지만 큰집 사촌 형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형님에게도 친동서가 있지만, 그 동서는 나이도 어리고 또 바빠서 명절 전날 밤늦게 내려올 때가 많다. 그러니 제사 음식 장만은 늘 형님 혼자 하게 되고, 손님 치다꺼리도 형님 일이다.

내가 큰집에 올라가서 형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제사 음식을 장만하다보면 형님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던 속상하고 답답한 이야기들을 나에게는 가끔 털어 놓는다. “동서야, 나는 동서가 내 친동서보다 더 만만타. 동서는 이물 없고 편하다.”

촌에서 농사지으며 살자니 오죽 힘들겠는가. 게다가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 같이 놀 사람도 없고, 또 전부 다 집안 어른들뿐이니 처신이나 언행에 얼마나 조심하며 살아야 했을까.

형님은 시집 올 때 인물이 고와서 집안 시동생들이 다들 ‘형수 곱다’며 칭찬했다. 그러나 세월은 형님을 건너가지 않았다. 힘든 농사일에 그 고운 얼굴이 검게 탔고 야리야리하던 몸매는 살이 올라서 퉁퉁해졌다.

낮에 나는 내가 잘 이용하는 재활용 매장에 가서 형님 옷을 한 벌 샀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는 안 된다며, 치마 사더라도 무릎 가려주는 길이로 사라고 했던 형님 말을 떠올리며 옷을 골랐다. 마침 알맞은 옷이 있었다. 점잖으면서도 품격 있어 보이는 옷이었다. 촌에서 농사짓는 형님이 입어도 얼마든지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옷이었다.

옷을 입어보는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다 한 마디씩 했다. “아이고 그 옷 어디서 찾았지? 옷도 잘 찾는다. 아래위로 맞춤이네, 맞춤. 가을에 어디 점잖은 자리 갈 때 입으면 좋겠다. 예쁘다, 무조건 사라.” “예뻐요? 이 옷 우리 사촌 형님 줄 건데 괜찮죠?” “아니 자기 옷도 아니고 형님 줄려고 옷을 산단 말이야? 친 동서보다 다 낫네. 옷도 다 사주고 말이야.”

옷을 드라이해서 새 옷으로 만들어야겠다. 곱게 포장해서 형님한테 보내 드려야겠다. 내가 보내주는 옷을 받고 형님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것도 모르던 새댁 시절을 떠올릴까?

갑자기 형님이 보고 싶어진다. <전원일기>의 ‘일용이 마누라’ 같은 우리 형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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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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