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직 대통령인 최규하와 박정희의 인연(?)이 '10월 26일'에 다시 이어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의 권한을 넘겨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10월 26일 장례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시작과 끝이 절묘하게 만난 셈이다.
임기 중에 서거한 박 전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유일하게 9일간의 국장을 치렀다. 반면 임기를 마친 지 26년이 흐른 뒤인 지난 22일 서거한 최 전 대통령은 오늘(26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며 5일간의 국민장을 마쳤다.
박정희 서거, "학생들 전체가 슬픔을 못 이기고 통곡했었다"?
국장과 국민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국가 최고 통치자의 장례는 일반 국민들의 것과는 다르다. 국장과 국민장은 국고에서 장례비용을 보조하는 것만을 보더라도 말 그대로 국가적인 일이다.
지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9살이던 친구들은 한결같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학생들 전체가 슬픔을 못 이기고 통곡을 했었다"고. 27년이 흐른 오늘도 영결식장에서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조문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과거의 국장과 오늘의 국민장은 다른 면을 살피게 한다. 27년 전 통곡을 했다던 친구들은 "왜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었는지 모르겠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운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한결같게 그 때 흘린 눈물의 의미를 거꾸로 바꿨다.
가장 짧은 임기를 마쳤던 최 전 대통령의 서거에도 "굴곡 많은 현대사의 비밀을 밝혀 놓고 갔어야 했다"며 국민장에 대한 애도보다 아쉬움을 앞세우기도 한다.
한편 조선의 국장은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오늘날의 국장이나 국민장과는 비교가 안 된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국장은 무려 5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심지어 선조의 비인 의인왕후는 능지 선택 문제 등으로 7개월 동안 국장을 치르기도 했다. 조선의 국장제도는 태조 이성계의 국장 이후 왕과 왕비의 국장기간을 5개월로 정했고, 국장 이외의 장례기간은 국법에 정4품 이상 사대부는 3개월, 그 밖의 사람은 1개월로 못 박았다.
고려의 국장이 1개월 이내였고 2달을 넘긴 예가 드물었던 것에 비하면, 5개월이라는 길고 긴 조선의 국장기간에는 신생왕국의 위엄과 기세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지금의 보편화된 3일장이나 길어야 5일장에 지나지 않은 유명 인사들의 장례기간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당시 국장 사진들에는 한 국가의 지도자를 보내는 아픔이 절절하게 배어있다. 더욱이 나라를 잃어버린 통곡까지 더해졌으니 차라리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등 4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서거했다. 이제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현직 대통령들이 세월의 흐름에 밀려 서거하면 다시 국장이나 국민장이 거행될 것이다.
국장과 국민장의 판단 기준은?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국장과 국민장에 대한 판단 기준이다. 지난 89년 12월 20일 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제2조는 '국장 또는 국민장의 방법·일시·장소와 묘지의 선정 및 조성, 소요되는 예산의 편성과 결산' 등 위원회의 관장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제3조 위원회의 구성에서는 "위원장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위촉하고 부위원장과 위원은 사회저명인사, 고인의 친지와 공무원 중에서 위원장이 위촉한다"고 적고 있다. 제10조 장의기간에서는 "국장은 9일 이내, 국민장은 7일 이내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정한다"고 규정한다.
현재 법령에 따르면 고인에게 가장 큰 명예는 9일간의 국장이다. 그런 점에서 시행령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전직 국가 원수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예우에서 치르는 장례라면 국장인지 국민장인지, 9일인지 7일인지, 마지막 가시는 고인을 위해서는 직책에 따르든, 공로를 평가하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김구 선생의 장례식 절차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던 적이 있다. 김구 선생 쪽에선 민족장을, 이승만 정부에선 국장을 하자고 맞섰던 것. 이 논란은 "자기들이 죽여 놓고 무슨 국장이냐"는 김구 선생 쪽의 반론에 의해, '국민장'이라는 이름으로 타협됐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국장과 국민장에는 많은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리 후세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거행된(비록 누구도 내게 동의 여부를 물어 본 적은 없지만) 국장과 국민장에서 무엇을 떠올릴 지 궁금하다.
| | 국장과 국민장의 차이는? | | | 국장은 국가 이름으로, 국민장은 국민 이름으로 거행 | | | | 국장(國葬)
대통령을 역임하였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하였을 때 거행하는 장례의식.
국민장(國民葬)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적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때에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거행하는 장례의식. - 이상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발췌.
국장과 국민장 대상자의 결정, 장의위원회의 설치, 장의비용 및 조기(弔旗)의 게양 등에 관한 사항은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규정하고 있다. 장의 대상자는 주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영결식은 개식-국기에 대한 경례-고인에 대한 묵념-고인의 약력 보고-조사-종교의식-고인의 육성 녹음-헌화 및 분향-조가-조총-폐식 순으로 거행된다.
국민장과 국장의 주요 차이점은, 국장은 국가 명의로 9일 이내 기간에 거행하며 장례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국민장은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7일 이내에 치르며 장례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보조한다는 점이다.
정부 수립 후 국장을 치른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국민장은 김구 전 임시정부 주석를 시작으로 장면 전 부통령, 신익희 전 국회의장, 조병옥 박사, 육영수 전 대통령 영부인 그리고 1983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순국한 17인의 합동국민장 등 12차례가 있었다. 한편 이승만, 윤보선 두 전직 대통령들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을 치렀다. | | | | |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책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에 실린 것을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본 사진은 이혜원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위원께서 책 저자에게 제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