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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 안으로 들어왔으면 이제 좀 천천히 좀 가자.

짐리림이 숨을 헐떡이며 손에 묶여있는 끈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버텼다. 짐리림의 손과 다리는 아누에게 마구잡이로 끌려가다시피 하는 통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의외야. 탐사선을 전혀 손보지 않았군.

걸음을 멈추기는 했지만 아누는 짐리림의 안위는 뒤로 한 채 탐사선의 상태를 보고 투덜거릴 뿐이었다.

-나 역시 의외일세. 짐리림이 아직도 살아있을 줄이야. 그것도 아누와 함께 다니다니.

깜짝 놀란 아누는 손에 고압 전류 방전기를 올려 쥐고 목소리가 울린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보더아가 광선총을 손에 들고 벨릴, 구데아, 에아와 함께 서 있었다.

-아누,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어.

보더아의 말은 아누를 비꼬거나 하는 어조가 아니었고 매우 진지했다. 아누는 에아와 보더아를 번갈아 보며 방전기를 보더아의 몸에 정확히 겨누고 소리쳤다.

-모든 게 계획된 일이라는 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꾸민 이유가 뭐지?

말은 당당하게 내뱉었지만 아누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누가 예상한 반응은 냉동된 채 있어야 할 자신을 보고서는 보더아가 놀라고 에아는 당혹스러워 해야만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아니야. 이 모든 게 하쉬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자네는 아직 모를 테지. 그건 미안하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자네를 움직이기 위해서 이런 속임수는 불가피했네.

아누는 눈을 부릅뜬 채 보더아를 노려보고 소리쳤다.

-허황된 소리로 현혹하려 들지 마라!

-허허허허허허허! 천만에! 나를 잘 보게.

보더아는 광선총을 벨릴에게 맡기고서는 양손을 올리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 순간 보더아의 온몸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힘이 강렬히 전해져 왔다.

-이봐 아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짐리림 역시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서는 다급히 소리쳤다. 아누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자신의 느낌을 짐리림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줄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 이 느낌은 전에 분명히 느껴봤던 거야.

아누의 대답이 없자 짐리림은 혼자말을 길게 중얼거렸다.

-혹시 기억하나? 내 불찰로 탐사선이 가이다에 비상착륙할 때 누군가 강렬한 상념을 주지시킨 바 있지. 이런 내용이었어. ‘내 고향 하쉬, 붉은 거포아(하쉬행성의 태양)와 갈색의 오하길(하쉬행성의 가까이에 있는 혹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곳. 그곳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안녕,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안녕. 생명의 행성 가이다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늦기 전에 모두에게 도착하기를...’ 그게 바로 보더아일 줄이야.

아누는 슬쩍 짐리림의 말을 잘랐다.

-저건 보더아가 아니야.

-뭐?

그 말에 보더아는 벌린 팔을 서서히 내리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맞네. 난 너희들이 아는 보더아가 아니야.

아누와 짐리림은 물론 보더아의 뒤에 서 있는 에아, 벨릴, 구데아는 경외심 가득한 표정으로 보더아를 우러러 보았다.

-난 가이다의 존재를 예전에 미리 이곳에 도착한 탐사선으로 인해 알게 되었네. 하지만 그 탐사선은 너희들에게 아무런 자료도 주지 못하고 가이다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네.

아누는 가이다가 위치한 지점으로 간 탐사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보더아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맞네, 자네들보다 먼저 출발한 탐사선은 없었지. 하지만 가이다에 먼저 도착한 이들은 자네들의 후손들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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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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