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어쩌면 부모들이 스스로 자식들에게 끌려가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자기변명 같은 말이 아닐까.

39세에 낳아 친구처럼 지내겠다던 딸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서울에서 이곳 파주로 이사온 지 몇 달이 지나면서 아이가 부쩍 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는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라서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니 완전히 다른 아이들이 되는 것 같았다. 작년 4학년일 때만 해도 어린아이 같던 딸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엄마보다 키도 크고 마음의 키도 언제부터인지 훌쩍 자라버렸다.

그래도 유난히 혼자여서 그런지 엄마하고 외에는 거의 말도 없고 무엇을 해도 엄마하고만 할 줄 알았던 딸아이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건 몇 달 전부터였다.

옷 한 벌 가지고도 불평할줄 모르고 용돈을 줘도 모아서 엄마 생일 때 풀코스(?)로 이벤트를 열어 엄마를 즐겁게 해주던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의 아파트단지에 놀러가는 일이 잦아지고 공부를 한다며 친구집에도 가고… 자연스런 변화이겠지만 집에서 엄마하고의 시간 외에는 모르던 아이다보니 변화가 유난히 달라보인 것도 있었다.

며칠 전엔 라페스타(일산 문화거리)에 가서 친구 선물을 사겠다며 용돈을 달라고 하기에 2-3천 원하는 학용품이나 사나 했더니 요즘이 조선시대냐며 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생전 엄마에게 용돈을 스스로 달라고 할줄 모르던 아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경제적인 것도 체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순순히 돈을 내주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선물을 조금 사고 남겨 올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친구 선물도 사고 3천 원짜리 옷도 사고 남은 돈을 가지고 저희들끼리 햄버거도 사 먹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돌아왔기에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고 그날은 지나갔다.

저희들끼리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는 척하며 계속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마땅치 않고 머리 모양, 옷 모양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도 거슬렸지만 참는 데까지 참자고 눌러 삼키고 있다가 급기야 며칠 전에는 터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커져버린 것이다. 집에 오면서 계속 전화를 해도 받지 않기에 아직 안돌아왔는지 혹 무슨 일이 있는지 잔뜩 걱정을 하면서도, 그래도 한편으론 잠들어서 못 받을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며 졸이고 돌아와서 보니 컴 앞에 앉아 놀다가 그만 전화기는 다른 방에 놓아두고 몇 시간째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며 화를 냈고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 황당하다는 듯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더 격해져서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다그치다 보니 그만 싸움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나에게 "엄마는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라고 했고 나는 지지 않고 그런 딸아이에게 이론으로 공격을 하다가 그만 싸움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가끔 다투어도 금세 풀어지곤 했는데 그 날은 나도 기분이 언짢고 속도 상하고 해서 화를 내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아이를 너무 위해 길렀나 하는 생각과 함께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었다. 한참 있어도 내가 기척이 없는 것을 보고는 아이가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엄마! 울지 마요. 내가 잘할게" 하며 저도 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날의 에피소드는 막이 내렸다.

그런데 정작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며칠 전 친구들과 다른 아파트 단지에 놀러갔다가 다른 학교의 아이들을 만난 모양인데 그 아이들이 딸아이와 친구에게 너희 몇 학년이냐며, 우리는 6학년이니 언니라고 존대어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딸아이는 물론 친구들도 모두 키가 크다보니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며 아이들 말로 튕기는 꼴이 돼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열 받은 그 아이들은 너희 내일 학교 앞에 갈 테니 그때보자고 하며 씩씩거리고는 가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몇 달간 엄마에게 제 일은 상관 말라며 다 알아서 하고 있다고 잔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던 딸아이는 은근히 겁이 났는지 "엄마, 내일 낮에 집에 있으면 안돼?' 하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큰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요즘 아이들을 알 수 없으니 그럼 엄마가 학교 앞에 끝날 때 맞춰 갈 테니 걱정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 다음날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시간을 겨우 내어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오고 있는데 조금 늦을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였다.

약속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막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집에 왔어." "별일 없었니? 그 아이들 안 왔어?" 하고 물으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딸아이를 나오라고 해서 모처럼 낮시간에 만나 슈퍼에 들러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도 사고해서 걸어오는데 딸아이의 친구들을 만났다.

기회다 싶어 "얘, 아줌마 알지? ○○야 옥진이한테 얘기 들었는데 처음부터 나쁜 학생이 따로 있는게 아니야, 너희들이 잘못이 없다고 해도 괜히 시비를 걸 수도 있고 돌아다니며 놀다보면 나쁜 아이들도 만날 수 있으니 이제 멀리 가서 놀지 말아라! 옥진이를 데리고 가야할 일이 있으면 앞으론 꼭 아줌마한테 허락을 받고 가. 옥진이도 엄마하고 역속을 했으니까" 했더니 "예" 한다.

마음속에 갖고 있던 것을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엔 너무 보수적이고 고지식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무언가를 해결하고 다니기엔 이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난번 친구물건을 사기위해 갔던 일도 마음이 걸려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사실은 엄마밖에 모르던 아이가 달라지는 것이 섭섭해서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 딸아이를 잘 알기에 엄마하고의 연대가 있는 위에 친구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성장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집에 오면 두세 시간씩 나가놀려고 하던 아이는 이제 예전처럼 나가지 않고 차분하게 엄마와 전화대화도 하고 책도 보고 하는 본심(?)으로 되돌아 왔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런 형태로 가진 않겠지만 최소한 엄마가 저를 어떻게 키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고 키웠기에 엄마 말을 들어주고 엄마와 함께 모든 것을 상의하고 그야말로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 고맙기만 하다.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강아지도 돌보고 엄마 밥도 준비해놓고 기다리던 딸아이와 내일은 예정된 행사장에 함께 들러 취재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이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 "자식 이기는 부모 있다(?)"이다. 하하.

덧붙이는 글 | -자식사랑이야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정말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부모들의 몫일 것 같다 -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늦깍이로 시작한 글쓰기에 첫발을 내딛으며 여러 매체에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싶어 등록합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인터넷 조선일보'줌마칼럼을 썼었고 국민일보 독자기자를 커쳐 지금은 일산내일신문 리포터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구슬줄넘기를 아시나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