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고향인 전남 목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핵실험 사태와 관련 "평화체제를 위해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은 28일 오후 목포역에서 열린 고향 방문 환영대회에 참석해 북미 직접대화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 등은 우리 주장 따라야"
지난 67년 6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젊은 김대중은 목포역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유달산아 네게 넋이 있다면, 영산강아 네게 뜻이 있다면 이 김대중을 버리지 말아다오"라고 호소하고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28일 목포역 광장에서 1000여명의 대중 앞에 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을 버리지 말아다오"라는 호소 대신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는 하는 듯 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희망을 가집시다, 전쟁만큼은 막읍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PSI는 한반도 주변에서 잘못 실시했다가는 무력대결을 부를 수 있고, 무력대결은 전쟁을 부를 수 있고, 전쟁이 나면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과 한국에 대한 압박 등을 겨냥해 "미국이나 온 세계는 우리의 주장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북의 핵무기 완전 포기와 미국의 북미대화를 거듭 주장했다. 그는 "북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면서 "미국은 북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풀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쿠바를 50년 동안 봉쇄했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봉쇄를 한 곳은 모두 실패했고 개혁과 개방을 한 곳은 성공한 것을 교훈 삼아서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봉쇄 정책을 비판했다.
"정치를 제외한 모든 일에 헌신할 것"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기간 성과에 대해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내, 모든 민주적 권리와 인권보장을 해 민주인권국가를 만들었다"면서 "또 외환위기의 국가에서도 금모으기를 하면서 국민들의 힘을 얻어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평했다.
이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권을 신장하고 노동운동의 자유를 보장했고 정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고 "과거에는 판문점에서 총소리만 나도 난리가 났는데, 지금은 북이 핵실험 했다고 해도 안심하고 살고 있다, 이는 남북교류 때문"이라고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반박했다.
김 전 대통령은 15여분 동안의 연설에서 두 차례나 "앞으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최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 등 정계개편론에 대해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관심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는 하지 않고 나라 일을 위해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평화적 통일에는 죽는 날까지 헌신하고자 한다", "평화를 위해 전쟁만은 안된다, 그러한 역사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한편 이날 환영대회에서 연설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과 감사의 정으로 고향과 목포를 찾아왔습니다"라며 "반세기 동안 정치에 참여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것은 우리 국민, 특히 고향이 성원과 격려 덕"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많은 영광을 누렸다"면서 "모든 영광을 나의 사랑하는 고향의 전라도에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목포역에 울러퍼진 '목포의 눈물'... DJ, 2절까지 불러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이후 80·90년대 호남을 대표하던 노래인 '목포의 눈물'을 1000여명의 청중들이 함께 불렀다.
이날 고향 방문 환영대회에 참석한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낙연 민주당 의원,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 등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 10여명의 의원들은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단상에 앉아 '목포의 눈물'을 2절까지 함께 불렀다. 40여분간 진행된 환영대회는 "대한민국 만세", "김대중 선생님 만세", "목포시민 만세", 만세 삼창으로 끝났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목포 한 호텔에서 여야 국회의원, 박준영 도지사, 인근 시군 단체장, 의회 의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군 하의도 주민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만찬을 한다. 29일에는 전남도청사를 방문한 뒤 목포 시내를 둘러보고 이날 오후 상경할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에 도착하기 두 시간 전인 정오 목포역 광장. 김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대부분 목포시민들이었지만 그 중 무안이나 함평, 심지어 흑산도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었다. 환영행사가 시작되기에는 아직 이른 때여서 역전 근처에서 김 전 대통령을 화제 삼아 술잔을 나누는 모습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도민들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과 건강 그리고 남북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특히 나이 지긋한 도민들은 '40대 기수론' 이후 시련과 좌절로 점철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반추하고 있었다.
최대길(74, 목포시 산정동)씨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감옥생활까지 한 그 양반이 모든 걸 무릅쓰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한 길을 걸어 온 것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며 "세상 어떤 가치가 신념을 향한 그의 의지와 비교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옥심(48, 목포시 용당동)씨 역시 "민주화와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해 존경한다"며 "이번에 못 보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왔다"고 말했다.
목포역 광장에 모인 도민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햇볕정책에 대한 확고한 지지의사를 표했다. 전남 무안에서 친구와 택시를 대절해 올라왔다는 편무섭(51)씨는 "햇볕정책으로 탄생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남북) 긴장완화에 얼마나 좋은 역할을 했느냐"며 "김 전 대통령의 실크로드 구상을 위해서도 햇볕정책은 반드시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씨는 이어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거부해 핵실험을 가져왔는데도 햇볕정책이 핵실험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재종(55, 목포시 용해동)씨는 "북한의 핵실험 시국에서 안보불감증 운운하지만 이미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며 "과거에는 생각도 못할 침착함을 발휘한 것 자체가 햇볕정책의 성과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8년 만에 고향 목포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도민들은 환영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착잡함을 보였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목포역에 도착해 행사장에 입장할 때 울려퍼진 동요 '고향의 봄'을 따라 부르던 일부 여성들의 불거진 눈시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목포역 광장에 모인 도민들은 한결같이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하고 장수를 기원했다. 김옥심씨는 "몸 건강히 만수무강하셔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영민(56, 목포시 이로동)씨도 "지금 한반도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며 "부디 힘을 내 자신의 과업을 완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얘기했다. / 이승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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