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간첩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다 사의를 표명한 김승규 국정원장.
간첩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다 사의를 표명한 김승규 국정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으로 오랜만에 고전적인 '간첩'사건이 터졌다.

그동안 간간히 직파간첩 검거소식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이제 국민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역시 간첩은 운동권이나 정치권과 연계가 되어 있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도 고전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대선이 가까워오는 시점이고 사회가 불안하다는 '타이밍'도 고전적이다.
간첩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선동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말이다. 그것은 미국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바가 있다.

정치권 그것도 상대 당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 재야시민단체에 잠입해 그동안의 반미투쟁을 선동한 것처럼 이번에는 마치 386이 모두 간첩인 것처럼 음산한 선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간첩사건의 유효기간은 대선이 끝나면 같이 끝이 난다. 이번 사건도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에 불과할 것이다. 과거에는 반정부세력을 간첩으로 모는데 열중했다면 지금은 친정부세력을 간첩으로 모는데 열중하는 것만 달라졌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서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여간 께름칙하지 않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해도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대한민국에 5만여명의 간첩이 있다고 하는 극우인사의 심리상태는 자신의 반대세력은 모두 간첩으로 보이는 정신분열적 사고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간첩을 필요로 할까? 친일, 군사독재를 통해 부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친일하고 군사독재에 앞장선 삶을 정당화 해야 할 간절한 필요가 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6.25의 비극을 불러온 북한이고 공산주의고 이를 상징화한 간첩이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는 항상 6.25 이후부터밖에 없다.

독립운동사를 가르치는 것은 좌경적이라고 한다. 외세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며 나라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한 것이 그들의 역사관의 전부다. 친일과 군사독재의 유일한 그리고 유력한 방패막이는 반공, 반북, 간첩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탈 이념의 시대가 도래하자 반공은 점점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외치는 사람은 이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주체의 사회주의를 외치는 북한이 있다. 어쩌면 북한의 붕괴는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일 것이다. 소련이 강할수록 제임스본드의 007이 재미있듯이 북한이 무너지면 어디에서 친일과 군사독재보다 나쁜 사람을 찾을 것인가?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이 빨갱이였다.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화 투사들이 빨갱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일제든 군사독재든 비이성적인 지배체제가 만들어지면 빨갱이는 항상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 비이성적인 지배체제를 해체하면 간첩은 없어진다. 공산주의도 없어진다. 그런 논리가 햇볕정책이고 화해정책이다. 그렇지만 햇볕정책과 교류협력이 공산화되는 과정이라며 난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보아라! 퍼주기의 대가가 핵무기 아닌가?"

어찌 보면 곤혹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무기가 체제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구소련의 해체에서 목격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핵무기는 북한 지배세력의 자폭용 수단일 수밖에 없다.

북한 고립시키면 주체사상은 계속 힘 발휘

이미 주체사상이 보편이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스스로 만들어온 국가시스템이 전시체제 이외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이 검증되었다.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연착륙을 원하고 있다. 단지 현재 지배세력들의 기득권을 유지한 채 중국과 같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한다. 여기에 북한의 고민이 내재한다. 중국과 같은 정도로 개방되면 주체사상과 그 지배체제는 끝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고립시키면 주체사상은 계속 힘을 발휘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의 긴장은 높아지고 북한은 고사 직전에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이것을 피하자는 것이 햇볕정책이고 DJ 노벨평화상의 이유였다. 남북의 통일은 남과 북의 극단적인 세력들이 아주 극소수가 되거나 없어져야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분단이 강화되고 고착화되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주체조선과 사회주의를 유지·온존하기 위해서 남한은 친일군사독재세력의 부의 세습을 위하여 얼마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통일을 원할 텐데 그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북한의 주체사상은 전시체제를 위한 시스템이고 남한의 친일 군사독재는 북한이 있어야 가능한 이데올로기라는 딜레마가 있지 않은가?

이제 철지난 이념 전에 매달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386들은 친일 군사독재시절, 그 비이성적이고 파쇼적인 시절 온몸을 내던져 민주화를 외치며 성장한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마르크스도 주체사상도 보았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공안통치라는 상황에서 차단된 정보를 알고자 하는 방편으로 참고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그 어두운 터널을 뚫고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마르크스와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386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60년 동안 이어져온 분단이 그렇게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친일 군사독재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자랐고 주체사상도 알 만큼 알고 있는 세대다.
그래서 둘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두세력을 일방적으로 배척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 두세력이 미래지향적인 시대성은 상실한 지 오래지만 현실적인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풀어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두 번에 걸쳐 남한의 극단주의 세력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친일 군사독재세력이 그들의 체제유지를 위해 금단의 열매라고 여기던 마르크스 주체사상을 따먹어 보니 아무런 미래가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이것이 수구기득권세력이 늘 걱정하는 대목 아닌가? 세상에서 왕국을 건설한 사상은 결코 보편적사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가?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어디에도 왕국을 건설한 적은 없다.

한반도는 양극화된 이념대결의 각축장에서 이젠 다극화된 이해관계의 각축장으로 변화되었다. 이때 다시 식민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통일,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지 않는 통일, 나아가서는 동북아 평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되살려야 할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우리게 있다.

마지막으로 혹시 북한과 법테두리 밖에서 일을 도모하는 무모함은 이제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사실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성격에 따라 되살아 날 수도 있는 불행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간첩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가슴에 손을 얹고 간첩이 미운 것인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간첩이길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단언컨대 주체사상과 친일 군사독재는 이미 미래가치가 없다. 단지 그들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할 뿐이다. 이 천박한 이념전에 분별 있는 국민은 의연하길 바랄 뿐이다.


2006년 10월 마지막 주
한탄강가에서 이철우

덧붙이는 글 | 뉴라이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월요편지를 통해 쓸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