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무슬림사회의 최고 성직자인 셰이크 알힐랄리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건 지나친 노출 때문"이라며 그런 여성을 '노출된 고기'에 비유해서 호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호주 무슬림 율법고문(Mufti)인 셰이크 알힐랄리는 지난 9월 중순, 시드니에서 500여명의 무슬림 신자들에게 라마단 설교를 하는 도중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선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돌아다니는 여성들 때문에 강간사건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고기를 포장도 하지 않고 길거리나 공원 등에 내다놓으면 고양이가 와서 먹지 않겠는가"라며 "고양이와 포장하지 않은 고기 중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크냐"고 저명한 무슬림 학자 라피의 말을 인용해서 물었다.
알힐랄리는 역시 라피의 말을 인용해서 "포장하지 않은 고기의 잘못이 더 크다"고 결론지으면서 "만약에 강간피해를 당한 여성이 히잡(무슬림 여성의 스카프)을 쓰고 집에 머물렀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포장 안한 고기와 그걸 먹은 고양이, 과연 누구 잘못이냐"
그의 설교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여성모독'이라는 강력한 항의를 받는 것으로 흐지부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마치 강간범죄자를 옹호하는 듯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
알힐랄리는 "강간사건이 발생하면 남자는 중범죄자가 되어 롱베이 감옥에 갇혀서 평생(65년)을 보내야 한다, 이런 재난이 과연 남자만의 잘못인가"라며 "'노출된 고기' 논리대로라면 여자에게 90%의 책임이 있으니 함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놈의 벌거벗은 고깃덩이만 아니었으면 고양이가 낚아채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꼭 집어서 그 사건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그 사건이 2000년에 발생한 레바논계 무슬림 청년들의 백인여성 집단강간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인종적 증오심 때문에 저질러진 잔혹한 사건이었다.
알힐랄리의 다음과 같은 결론은 더욱 극적이다. "사탄은 여성을 절반쯤 자기편의 군인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속삭인다, '여자, 나의 강력한 무기여! 제 아무리 꼿꼿한 남자도 그대 앞에서 굴복할 것'이라고 말이다."
대변인 "진의 왜곡됐다"... 그러나
이같은 설교가 있은 지 약 20여일이 지난 10월 26일, 호주언론들은 일제히 알힐랄리의 발언을 보도했다. 강간사건처럼 민감한 사안을 '노출된 고기'라는 여성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비유로 설교했다는 사실과 사안의 묘한 선정성 때문에 그의 설교는 뒤늦은 초특급 뉴스가 됐다.
기독교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호주에서 무슬림의 논리에 근거하여 시대착오적인 극단론을 펼쳤다는 이유로, 호주 정계의 여야 지도자는 물론이고 여성계와 종교계까지 들고 일어난 것. 호주 무슬림사회 내부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면서 연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9일 오후 케이자르 트라드 무슬림협회 대변인은 전화통화에서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을 뿐만 아니라 논쟁의 빌미일 뿐이고, 그동안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호주 무슬림사회에 타격을 가하자는 반 무슬림 세력이 준동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트라드 대변인은 알힐라리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서 "2005년 12월 4일에 발생한 시드니 인종폭동 1주년과 연계하여 호주 주류사회가 무슬림그룹에 경고성 딴죽걸기에 나선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트라드 대변인은 "얼마 전에 발생한 로마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지하드 발언'을 상기하면 알힐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며 "교황이 '중세기의 책을 인용한 것이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처럼 알힐라리도 라피의 발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발칵 뒤집힌 호주사회 "성범죄를 선동하는 것"
그러나 트라드의 알힐랄리 옹호 발언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그를 비난하는 발언들이 연일 호주 주요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존 하워드 총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정계 지도자들이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호주국영 ABC-TV에 출연해서 "내가 그를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고할 수는 없지만, 그는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발언은 호주국민과 무슬림 신도들의 관계에 큰 손상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 킴 비즐리 당수도 채널9의 <선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의 언동은 호주사회에서 용납받을 수 없다,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추방은 불가능 하지만 더 이상 설교를 하게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무슬림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온건한 무슬림 지도자들이 나서서 호주 무슬림 최고 성직자의 무분별한 발언을 규탄하고 "그의 설교가 무슬림 전체의 견해가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퇴는 불가피하다"고 호주 주류사회의 사퇴 주장에 합류했다.
여성단체의 반발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성차별방지위원회 프르 고워드 위원장은 채널9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설교는 성범죄를 선동하는 것"이라며 "무슬림청년들이 법정에서 변명하면서 지껄인 말을 무슬림 지도자가 인용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조사한 설문조사의 결과도 알힐라리 사퇴요구가 압도적이다. 그의 설교만 중단시켜야 한다는 답변이 17%, 그를 해고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80% 가까이 육박한 것. <데일리텔리그라프>가 자체 집계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84%의 응답자들이 이집트 태생의 알힐랄리를 추방해야 한다는데 찬성했다.
잇단 강경발언으로 눈엣가시
가히 십자포화에 가까운 맹공을 당하고 있는 알힐랄리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알라 아크바(Allahu akbar,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여서 "설교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지상에서 백악관을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에 물러나도 물러날 것"이라는 강성발언을 호주기자들에게 던졌다. 그는 이번 논란이 '찻잔 속의 폭풍'이라고 일축했는데, 반대파 무슬림 성직자는 '카테고리 5의 사이클론'이라고 응수했다.
알힐랄리의 반 서방세계 발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설교 도중에 "크리스천과 유대인은 신의 최대 실패작이며, 조지 부시·존 하워드·토니 블레어를 용서할 수 없는 악의 축"이라고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특히 시드니의 한 무슬림 방송에 출연해서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지하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구원하는 해방전사"라는 발언을 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호주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알힐랄리가 이토록 강한 발언을 하는 이면에는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집트 출신 사이드 쿠트브(Sayyid Qutb)의 영향이 크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인 헤즈볼라와 알카에다 등이 추앙하고 있는 쿠트브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을 창단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에 처형당했다.
알힐랄리도 같은 이집트 출신으로 무슬림형제단원으로 활동하다가 그들이 자살테러단을 조직할 때 지나친 극단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이탈했으나, 그는 여전히 무슬림사회에서 강경론자로 통한다.
호주에서 그를 이번 기회에 제거하려고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칫 그의 강성발언이 가뜩이나 테러위협에 시달리고 호주에서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서 두번째로 테러위협을 강하게 받고 있는 나라다.
결국 사퇴... "무슬림의 칼 내려놓았다"
10월 30일 오후, 라켐바 모스크에 모인 무슬림 리더들이 자신의 장래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알힐랄리가 갑자기 기절하여 인근 캔터베리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는 오랫동안 천식을 앓았다.
사퇴 압력과 건강문제가 겹쳐 고통스러워하던 알힐랄리는 결국 30일 밤에 사퇴를 결심했다. 31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그가 마침내 무슬림의 칼을 내려놓았다"고 보도했다. 트라드 대변의 전언에 의하면 그가 가족과 친구들의 설득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사퇴를 환영한 피터 코스텔로 부총리는 "여성과 유대인, 서방세계에 맞서는 설교를 10년도 넘게 한 것은 너무 길었다, 그의 언행에 나쁜 영향을 받은 무슬림 청년들이 호주에로의 동화보다는 고립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