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비채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제가 이 책(<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의 광고를 보았을 때 저를 끌었던 내용인 것 같았습니다. 서점에 가서 책을 훑어보고 사기로 마음먹었지요. 이 책은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마음에 강하게 각인됩니다. 일부러 쉽게 읽히도록 쓴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많은 노력을 기했을 것이고요.

글의 성격이 저자의 본업인 시 쓰기와 정반대의 성질이어서 더욱 어려운 글쓰기였을 것입니다. 시 쓰기는 에둘러 쓰는 것, 해찰거리되 알듯 모를듯한 의미를 함유한 시어를 생산해 내는 작업일 것입니다. 그 시어는 많은 경우 가슴과 머리를 통해 걸러진 것들일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반대 선상에 있습니다.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고백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시인의 아픈 과거, 슬픈 기억을 토해내는 그런 글쓰기였기에 쓰면서도 무척 마음 아팠으리라 짐작됩니다.

시인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무려 67가지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시인의 시작노트에 숨어 살던 '한마디'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마음에 두었다가 흘려버릴 것들을 시인은 시어를 모으듯 그렇게 '시작노트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습니다.

어쩌면 '한마디'씩을 서술해 놓은 그 장마다 한 편의 시를 생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시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본류를 세세하게 보여주는 시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너무 생생해서 다시 그 '은밀한' 시들을 쓸 수 있겠는지 싶습니다. 어쩌면 많은 시를 포기하면서 이 글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어 같은 '한마디'들이 있어 시인의 모습을 숨기지는 못합니다.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호승아, 이제는 실뭉치가 풀리는 일만 남았다", "인격이란 눈물과 비극을 처리하는 아량이다" ….

제게 생소한 '한마디'들도 많았습니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한 가지 용서하면 신은 나의 잘못을 두 가지 용서해주신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없이 비워버린다", "닫힌 문을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열려 있는 등 뒤의 문을 보지 못한다" ….

그러나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익히 들었던 말들도 많습니다.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사람은 실패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의 '한마디'를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삶의 고통을 말하는데 사람마다 십자가는 크기는 다양하지만 무게는 다 같다고 하는 우화를 소개하면서 "제 자신만큼 저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십자가는 없다"에 이릅니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요지도 "자기 자신 외에 상처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입니다. 같은 말이지요.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에서도 자기 존중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라는 '한마디'에서는 승주 선암사의 '뒷간'을 언급합니다. 저도 두 번 이용해(?) 보았습니다만 이곳을 이용해 보신 적이 있는 분은 '해우소'의 위력을 아실 것입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항상 새 밥을 짓는 사람입니다. 항상 공부해야 하고 사물과 인생의 현상과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혀야 하는 사람입니다"라고요.

군데군데 시인의 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운 부석사'라는 시에는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옵니다. '수선화에게'라는 시에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들 '한마디' 몫을 하지요.

시집 몇 권에 해당하는 책을 쓰고 시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맨 처음에 제가 언급한 '한마디',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에서 시인은 자신의 본분을 숨기지 않습니다. 바로 시 쓰기입니다.

그는 지금 시인으로서의 삶만 살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결국 가장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일을 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며,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랬으면 하고 바랐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고백들이 모여서 젊은이들에게 아니 '마음의 청춘' 모두에게 '한마디', 무수히 퍼져 나갈 수 있는 귀한 '한마디'를 선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한마디'를 발견하셨나요?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입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비채(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