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나오는 지붕
사탕 - 날아다니는 귀신? 비명소리 - 재미 - 그리고 그 이상.
비명소리를 따라 오세요.
스톤월 드라이브로 걸어오세요.
공짜!
서양의 대표적인 축제 가운데 하나라는 10월 31일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우리 동네 우체통마다 전단지가 붙었다. 바로 길 건너편인 '스톤월 드라이브'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얘들아, 비명소리만 따라가면 귀신이 날아다니고 사탕도 주고 볼거리가 많다는데 구경가지 않을래?"
"엄마나 혼자 가셔."
큰딸이 쌀쌀맞게 대꾸를 한다. 소위 의식이 있다는 엄마가 '안티 할로윈데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판에 천박한 호기심을 드러낸다고 생각을 했는지 딸의 목소리가 영 곱질 않다.
그러면서 충고까지 한다. 오늘 같은 날에는 불도 끄고 있어야 동네 애들의 습격(?)을 받지 않는다고. 실제로 딸아이는 밖으로 불이 새는 공부방 대신 불이 보이지 않는 방에 처박혀 그 밤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할로윈데이를 그냥 풍습으로 이해할 뿐이었다.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치 악귀를 쫓기 위해 동지 팥죽을 쑤어 방과 마루, 곳간 등에 놓거나 대문이나 벽에 뿌렸던 옛날 우리네 풍습과 비슷한 것으로.
그래서 별 편견 없이 할로윈데이를 취재해 보겠다고 맘을 먹었다. 작은딸과 함께 할로윈데이 이벤트 장소인 '유령이 나오는 지붕'을 찾은 건 밤 8시경.
많은 사람들이 스톤월 드라이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벤트가 열리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게 입구에 간판도 서 있었고 연기도 뭉개뭉개 피어오르고 있었다. 신이 난 동네 꼬마들은 할로윈 복장을 갖추고 엄마,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이벤트를 즐기고 있었다.
여러분도 이 엽기적인(?) 할로윈데이의 이모저모를 구경해 보시라.
엽기적인 할로윈데이
집 앞에 '시체'를 둔 엽기적인 집도 있다. 물론 진짜 시체는 아니다. 하지만 거미줄이 낀 화단 앞에 피 묻은 시체가 벌렁 드러누워 있는 건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 헌데 이 집 주인은 이런 걸 집 앞에 모셔 놓고도 꿈자리(?)가 사납지 않을까.
소란한 바깥에 문 밖을 연신 기웃거리고 있는 개가 이렇게 묻는 듯 하다.
"니들, 시방 뭐 하는 짓이여?"
이곳 해리슨버그 TV 방송국에서도 우리 동네 할로윈데이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기자가 나왔다. 그녀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귀신이 날아다니고, 연기가 자욱한 할로윈데이의 으스스한 밤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참 별난 사람들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관 속에 들어가 관을 박차고 나와 괴성을 지르질 않나, 피를 뚝뚝 흘리며 귀신 흉내를 내질 않나, 해골 바가지로 온통 집 둘레를 장식하질 않나…. 한 여름 납량 특집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런데 할로윈데이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Trick or Treat(사탕을 주지 않으면 혼내주겠다)!"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놀이는 생각 밖으로 아주 차분했다.
이들은 할로윈데이 복장인 도깨비나 마녀, 해적의 옷이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집집마다 돌면서 호박 모양의 바구니에 사탕과 초콜릿을 채워가고 있었다.
각 가정에서는 바깥 현관에 불을 켜둔 채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위해 사탕을 준비해 두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가정에서는 뭔가 쪽지를 들고 나와 현관문 밖에 붙이고 그냥 들어갔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사탕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사탕이 떨어졌으니 우리집 문은 두드리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인 셈이었다.
"Trick or Treat(사탕을 주지 않으면 혼내주겠다)!"
이 날 할로윈데이는 밤 행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낮에도 제임스메디슨 대학교(JMU)에서는 특이한 복장을 한 학생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이들은 피에로 복장을 하기도 하고 날개 단 천사의 모습을 하고서 강의실로 향하기도 했다.
또한 공공 도서관인 메사누튼 도서관의 사서도 전통적인 마녀 복장을 한 채 근무를 하고 있었다. 해마다 할로윈데이가 되면 그 복장을 고수한다고 한다.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
사실은 우리 집에서도 그 전에 할로윈데이 분위기를 경험하긴 했다. 지난 29일, 이곳 '쉐난도 밸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이 할로윈데이를 맞아 주민들을 위한 연주회를 열었다.
그런데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할로윈 복장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할로윈데이에 익숙하지도 않고, 또 싫어하기도 해서 그냥 흉내만 내는 복장을 했다. 그래서 큰딸은 검정 모자를 썼고, 작은딸은 할로윈의 상징인 호박과 같은 주황색 옷에 주황색 타월로 '양머리'를 만들어 썼다(양머리는 한국의 특허품?).
사실 할로윈데이 취재는 우리 집 우체통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결심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너무나 조용한 할로윈데이여서 취재할 거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로윈데이가 반기독교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실제로 내가 아는 미국 사람들은 할로윈데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대형 마켓이나 TV 등에서만 요란하게 떠들어 댈 뿐이고. 그런데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할로윈데이가 또 하나의 국적불명의 기념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하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미국인들의 축제인 할로윈데이를 경험하고 나니 새삼 우리의 점잖은 명절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