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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와 김은호의 사랑은 초월적인 사랑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어
황진이와 김은호의 사랑은 초월적인 사랑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어 ⓒ KBS
그렇지만 마음의 상처가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랑에 대한 그의 마음의 상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헤어짐이 만들어낸 상흔은 영광의 상처가 되도록 하는 것은 그 사랑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보호와 보존의 개념이고 좋아한다는 것은 소유의 개념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꽃을 꺾지 않고 보호하며 지켜보지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꺾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보존이다. 사랑을 소유하려 하면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나 행복을 쫓아가면 행복은 결국 숨어버린다. 행복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쫓아갈 수는 없다. 사랑을 찾아갈 수도 없다. 우연히 우리의 느낌 속으로 사랑은 슬그머니 들어온다. 이런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이 바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황진이의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은 몸과 마음을 성숙하게 만든다.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첫사랑이다. 이런 첫사랑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첫사랑은 영원히 가슴에 남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았을 때 쉽게 잊기도 한다. 황진이의 첫사랑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랑이다.

황진이의 첫사랑은 바로 초월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신분도 초월하고 계급도 초월하고 사회적 계약인 관습도 초월한 사랑이다. 그래서 황진이의 사랑은 위대하다. 그리고 처연할 정도의 애잔하다. 이런 사랑에 대해 가슴 설레지 않을 사람은 없다. 특히 천형(天刑)적인 신분제도의 억압과 통제를 많이 받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을 초월한 이상적인 사랑에 감동을 많이 한다. 감동의 질과 양에서도 다른 어떤 사랑보다 더 진하고 크다.

천출인 기녀와 사대부 집안의 아들과의 로맨스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사랑이 지극히 수동적이었던 조선시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첫 날밤에 처음으로 아내와 남편의 얼굴을 처음으로 대하는 결혼이 일반적이었던 시대를 감안하면, 황진이와 김은호의 사랑은 더욱 존재하기 어려운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소설적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에 소설적 상상력이 없다면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낭만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양반의 신분과 기녀의 신분을 포기하는 사랑의 실현은 너무나 극적일 수밖에 없다. 화려한 사치를 누리는 노예인 황진이가 기녀의 신분을 포기하고 관아의 노비로 살아가려는 생각도 대단하지만, 양반의 신분을 포기해야 사랑을 성취될 수 있는 김은호의 심적 갈등은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둘 다 첫사랑이 아닌가. 첫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첫사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린 나이에 겪은 첫사랑에는 신분도 계급도 빈부의 격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둘만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첫사랑은 이루어지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갈등과 비극적 요소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사랑이 갖는 맹목적인 감정과 불가능의 비존재성이 더욱 사랑에 눈멀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황진이와 김은호의 첫사랑은 또 다른 삶을 위해 이미 확실해 보이는 편안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더 위대해 보이고 이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이 났을 때 더 슬프고 애련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결국은 비극적으로 끝을 낼 운명을 갖고 있다. 김은호의 원인모를 죽음은 상사병(相思病)으로 결론이 난다. 상사병은 순수와 슬픔의 극치다. 아니 살아남은 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자 아픔이다. 이러한 슬픔과 아픔이 아름다운 연애이야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 사랑을 맺지 못해 구천을 해매는 영혼! 결국 영혼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 이런 사랑이 바로 황진이와 김은호의 사랑이다. 이 첫사랑은 황진이의 몸과 마음이 세상을 극복하고,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승화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첫사랑은 황진이가 세상을 연주하고 세상을 읊고 세상을 자신의 품에 껴안도록 만든 것이다. <황진이>의 저자인 전경린의 말처럼 황진이는 '세상은 길이고 길은 몸인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다모의 마지막 장면에서 좌포청 포도대장 조세욱(박영규 분)이 많은 화살은 맞고 쓰러지는 장성백(김민준 분)에게 "당신은 길이 아닌 길을 갔다"고 말을 하자, 장성백은 "처음부터 길이 어디 있소. 한 사람이 먼저 가고 다른 사람이 따라가면 길이 된다"고 대답한다. 바로 황진이도 그런 길을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개혁가라고 할 수도 있고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비록 기녀라는 신분이지만 많은 양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서가는 삶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첫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렇듯 첫사랑은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러한 첫사랑에 추함이나 지저분함은 있을 수가 없다. 단지 고고하고 애상적인 감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첫사랑의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첫사랑이 가져다주는 삶의 풍요로움에 우리가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이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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